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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문헌과 노회찬 : 면책특권이라는 방패

[취재파일] 정문헌과 노회찬 : 면책특권이라는 방패
'NLL 포기'라는 용어의 지적재산권은 정문헌 의원에게 있습니다. 정 의원은 지난해(2012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NLL 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정문헌 의원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바꿔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적이 없으니 정 의원을 거짓말한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한 겁니다. 검찰은 대선이 끝난 후 정 의원을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대화록 원문을 읽어 보니 정문헌 의원의 발언을 허위사실로 보기 여럽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정 의원의 주장을 적어도 의도적인 거짓말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NLL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 정리하기에는 지나치게 지리하고 복잡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진 끝에 민주당은 정문헌 의원을 다시 고발했습니다. 이번에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또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였습니다.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보든 공공기록물로 판단하든, 어쨌든 국가기밀인데 정 의원이 이 내용을 불법 누설했으므로 처벌해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선 직전 김무성 의원이 부산 유세에서 대화록 원문과 유사한 문장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며 인용했는데, 김 의원이 정문헌 의원으로부터 대화록 원문을 보고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이 사건의 법리적 쟁점은 사실 간단합니다.

1, 정문헌 의원은 대화록 원문을 보았는가?
2. (정 의원이 대화록을 봤다면) 정문헌 의원은 대화록 내용을 누설했는가?

2013년 11월 19일 검찰에 출석한 정 의원은 다음 날 새벽 검찰청을 나서며 두 쟁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 의원은 우선 첫번째 쟁점, '대화록 원문을 보았는가?'에 대해 "보았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 업무적 목적으로 원문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두번째 쟁점입니다. 정 의원이 읽은 대화록은 2급 비밀이기 때문에, 정 의원의 폭로는 비밀 누설 행위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에 관련된 법 조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7조(비공개 기록물의 열람)  ② 제1항에 따라 비공개 기록물을 열람한 자는 그 기록물에 관한 정보를 열람신청서에 적은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제51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경우에는 기록물을 취득할 당시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아닌 사람은 제외한다)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 제37조제2항을 위반하여 비공개 기록물에 관한 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한 자

제47조(비밀 누설의 금지) 비밀 기록물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거나 비밀 기록물에 접근·열람하였던 자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52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제47조를 위반하여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자



정문헌 500
정문헌 의원이 통일비서관 시절 대화록을 읽은 것은 업무상 정당한 열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문헌 의원의 폭로 발언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열람 신청서에 적은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한 행위'(37조 위반) 또는 '비밀 기록물에 접근 열람하였던 자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행위'(47조)에 해당이 될까요?

헌법이 제공한 방패: 면책특권

정 의원도 여기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들고 나온 무기가 면책특권입니다. 일단 기자의 질문에 대한 정 의원의 답변을 읽어 보시죠.

기자 질문: 대화록 내용을 공개한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요?
정문헌 의원: 일단은 국정감사라는 것이 국회에서 발언을 한 부분이니까요 그부분은 지금 제가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기자 질문: 공공기록물관리법상 목적외 유출에 해당하지 않나요?
정문헌 의원: (승용차에 탄 상태로 창문 너머로 대답) 목적 외가 아니고 국정조사 부분에서 영토주권부분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주목할 부분은 정 의원이 두 차례에 걸쳐 '국회 국정감사에서 발언'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대화록 내용 공개 행위가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도, 국회 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도록 규정한 헌법의 보호(헌법 45조)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문헌 의원이 자신의 발언의 의미에 대해 "영토 주권 문제인만큼 국민이 당연히 아셔야 할, 하지만 영원히 숨겨질 뻔한 역사적 진실을 밝혔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하는 것도, NLL 폭로가 국회의원의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문헌 의원의 NLL 폭로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1차적으로는 검찰이 판단할 겁니다. 만약 검찰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이 아니라고 판단해 정 의원을 기소한다면 법원이 다시 한 번 판단을 하겠죠. 결국 정 의원에 대한 기소와 유무죄 여부는 'NLL 폭로'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노회찬 X파일 판례로 보는 정문헌의 폭로 

노회찬 500

여기서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판례를 검토해 보는 것도 반드시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겁니다. 노회찬 전 의원의 X파일 사건 말입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2005년 국회에서 안기부 도청 테이프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한 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됩니다. 이어진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노회찬 전 의원의 폭로가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재판부는 노 전 의원의 폭로에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적용되는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노 전 의원의 행위에 면책특권이 적용되면 다른 쟁점은 판단할 필요도 없어지니까요.

대법원은 노 전 의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국회 발언애 대한 보도자료를 올린 행위에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립니다.  "인터넷 게재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개로 관련자들에게 추가 불이익 감수까지 요구할 수 없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국회 발언,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 기자회견 등에는 면책특권이 되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속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린 것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이라고 볼 수 없어 면책특권을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일단 면책특권을 배제한 후 이 사안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판단을 햇는데,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이 두고 두고 비판을 받는 이유죠.)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결론적으로 정문헌 의원의 발언은 면책특권의 보호 범위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이 그랬듯이 국정감사 발언은 면책특권이 가장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는 행위일 것입니다. 의원이 대선을 나흘 앞두고 NLL 포기 발언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습니만,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도 대법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과, 출입기자들에게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까지는 면책특권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노 전 의원과 비교해봐도 면책특권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 문제가 된 은 일반인들이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린 행위였습니다. 정문헌 의원은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올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11월 20일 현재 정 의원의 홈페이지는 총선 이후 올라온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NLL 폭로 보도자료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더 정밀한 사실 확인 작업이 있어야 겠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정 의원은 면책특권의 보호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제기된 의혹 가운데 면책특권으로 방어할 수 없는 것이 있긴 합니다. 김무성 의원에게 정 의원이 대화록 내용을 누설했다는 의혹입니다. 이에 대해 정문헌 의원은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두분 다 제가 국정조사에서 문제제기 한 부분이 언론에 나왔고, 그부분이 맞냐고 확인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맞다고 말씀드린 부분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국회에서 행한 NLL 폭로 발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모두 알려진 상황이었고, 김무성-권영세 두 사람 모두 그 내용이 맞냐고 물어와 그 내용이 맞다는 정도의 범위에서 확인만 해줬다는 겁니다.

그래도 의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김무성 의원은 대화록 내용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김무성 의원은 "찌라시에서 봤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정 의원 역시 김무성 의원 발언 내용을 보면 정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한 내용 말고도 상세한 내용이 많은데 어떻게 된거냐는 질문에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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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김무성 의원이 봤다는 찌라시는 누가 만든 것인지, 정문헌 의원이 정말로 기존 발언 정도만 확인해 준 것인지...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많습니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과 정문헌 의원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은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설사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문헌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대화록을 폭로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알려진 상황만 놓고 볼 때 정문헌 의원의 국회 발언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검찰은 제가 모르는 사실과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이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지거나 확인된 사실만 놓고 볼 때 면책특권의 방패를 뺏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과 정치적 해석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정문헌 의원을 무혐의 처분하든, 아니면 고발장 내용대로 기소하든, 정작 중요한 문제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NLL 포기 발언이 정말 존재했는가? NLL 관련 정상회담 내용 공개는 국익을 위한 폭로였는가, 아니면 정파적 이익을 위한 공격이었는가? 등 이 사건과 관련해 정작 대답해야 할 문제는 모두 정치의 영역에 존재합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내는 장면, 정권과 여야의 눈치를 보며 기교적인 결론을 내놓는 검찰,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검찰 판단 존중 VS 정치 검찰' 입씨름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지긋지긋한 풍경입니다. NLL 논란이 검찰에 올 때 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만 역시나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지니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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