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씨름이란 같은 소속팀 선수끼리 격돌했을 때 좀 더 경쟁력 있고 우승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진출시키기 위해 사전에 감독의 지시 하에 승부를 담합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고의 져주기', '승부 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팀 성적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아무 죄의식 없이 선수에게 져주라고 지시했고, 철저한 '을'인 선수는 감독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해왔습니다. 그야말로 불감증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플레이어들도 양보씨름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84년 천하장사에 오르며 모래판의 돌풍을 일으킨 백두급의 장지영 선수 기억하시나요? 장지영은 1989년 대회에서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강호동과 격돌했습니다. 두 선수는 모두 일양약품팀 소속이었는데, 당시 김학용 감독은 우승 가능성이 더 높은 강호동을 결승에 올리기 위해 장지영에게 져주라는 지시를 했고, 장지영은 노골적으로 모래판에 나뒹굴었습니다. 이 때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장지영은 결국 그 해 쓸쓸히 모래판을 떠났습니다.
'양보 씨름'을 비판하는 과거 기사입니다.
1986년 2월 18일 동아일보
1990년 11월 30일 경향신문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씨름에서의 져주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고 모두가 문제점을 인지했지만 개선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받고 승부를 조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대한씨름협회는 박승한 회장이 직접 승부조작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관련자들에게 영구제명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경기감독위원회의 활동과 교육을 강화해 제도적 보완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재 씨름협회 집행부와 각 구단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 수가 과거부터 이어져온 '양보씨름'의 관행에 젖어왔던 인사들입니다. 이들이 불감증에서 깨어나 진정 위기 의식을 느끼고 환골탈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민속씨름이 벼랑 끝에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