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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향 찾아 5만리

연어 사상 최다 회귀

[취재파일] 고향 찾아 5만리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고향 땅 부모형제, 친구들, 유년시절의 추억이 남아있기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향은 더 애틋하고 가슴 시리다. 도시 은퇴자의 상당수가 귀향, 귀촌을 꿈꾸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고향을 각별하게 여기는 게 사람만일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걸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물론 여우가 실제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지, 단지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쳐졌는지 이견은 많겠지만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기억하는 게 어찌 사람만의 일일까? 가을철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동해안 하천을 찾아오는 연어를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 진다.

연어의 귀향행렬은 해마다 시월쯤 시작된다. 단풍이 아름답게 산허리를 물들일 때면 동해안의 큰 하천에는 어김없이 연어 떼가 돌아온다. 2~4년 전 몸길이 5cm 정도의 어린 몸으로 떠났다가 60~80cm 크기의 어른이 돼서 돌아온 연어 떼가 커다란 몸집을 흔들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2만km가 넘는 먼 거리를 돌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향으로 회귀(回歸)하는 모습은 신비스럽고 감동적이다. 단순히 알을 낳고 후대를 퍼뜨려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을 넘어 생명의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올 가을 고향 찾아 돌아온 연어가 사상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연어는 바다에서 어민들이 잡을 수 있고 하천에서는 국가 기관이나 각 지방자치단체만 포획할 수 있다. 내년 봄 방류할 치어 생산을 위해서다. 국내에서 연어 최대 모천인 양양 남대천에서는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의 양양연어사업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고성의 북천과 명파천, 강릉의 연곡천을 포함해 4곳에서 연어를 포획하는데 올해 포획한 연어가 이미 2만 8천 마리를 넘어섰다. 1984년 이 사업소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연어를 많이 포획했던 때인 2007년(2만 6천여마리)과 1998년(2만7천여 마리)의 기록을 넘어섰다. 29년 만에 가장 많은 연어가 돌아온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연어 회귀가 사상 최다인 것은 방류한 연어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올해 돌아온 연어는 대부분 2010년과 2011년 방류한 것들인데 이 때 방류한 연어치어가 사업소 사상 가장 많았다. 회귀한 연어는 성숙할 때를 기다렸다가 알을 채란해 인공수정 시키는데 양양 연어사업소는 오랫동안 기술이 축적돼 부화율을 90%까지 높였다. 때문에 비슷한 양의 알을 채란해도 과거보다 생산하는 치어가 더 많아졌고 다음해 봄  방류하는 치어도 증가했다.

알을 낳기 위해 돌아온 연어를 잡아서 배를 가르고 알을 받는 게 어떻게 보면 연어에게 아주 몹쓸 짓처럼 비쳐질 수 도 있다. TV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봐왔던 외국의 연어처럼 하천에서 자연 산란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말이다. 하천이 아닌 인공 사육조에서 태어나 역시 사육조로 돌아와 인간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연어의 삶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 역시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게 지금 시대의 방식이라면 아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천에서 자연 산란한 알의 부화율이 5%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올해 채란해 인공 수정시킨 연어 알은 2달 정도 지나면 부화한다. 그리고 3달 정도 더 키우면 하천으로 방류할 수 있을 크기로 자란다. 올 가을 연어 최다 포획은 최다 채란으로 이어졌고, 최다 채란은 내년 봄 치어 최다 방류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다시 2~3년 후 돌아올 연어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던 과거에 연어가 하천 가득 올라왔다는 가을의 전설이 다시 현실이 되길 기대해본다. 연어가 어민들의 소득원이 될 만큼 넉넉히 잡혀 자원으로 평가받는 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슴 설레며 이런 기대라도 품어볼 수 있기에 올 가을은 그래도 여느 때보다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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