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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러분의 아파트는 안전합니까?

[취재파일] 여러분의 아파트는 안전합니까?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과거 보안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정가를 주름잡는 로비스트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곳,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게시판 글에서나 봤음직한 입주자 대표와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저희 아파트 이야기입니다. 올해 초 아파트 1층 게시판에 공지문 하나가 붙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피트니스 센터가 들어오는데, 운영비 마련을 위해 세대당 8천 원씩의 관리비를 부과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정한 주체는 입주자 대표희의였습니다.

사전에 주민의견 수렴 등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맞벌이하는 와이프와 제가 이용할 일도 거의 없는데, 무조건 관리비를 더 내라니요. 어이없고,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여느 때처럼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주민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어떤 분께서 강하게 항의한 결과로 짐작하는데, 사용자에게만 요금을 부과할지 아님 관리비 형태로 일괄적으로 부과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투표 결과가 붙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 형태로 비용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지요. 가가호호 방문해 의견을 물은 결과 관리비 형태 부과를 결정한 사람이 많았답니다. 저희 집은 누군가의 방문을 받은 적도, 투표를 한 적도 없지만요. 주로 낮 시간대에 다니면서 주민들 의견을 물은 결과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낮 시간대 계신분이라면 피트니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자기 부담이 줄어드는 관리비 형태의 부과가 더 유리하겠죠.

피트니스 사용료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합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지만, 어떤 주민분의 항의가 없었다면  많은 주민들이 의사표시도 못 한 채 관리비를 추가로 납부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아파트는 비교적 양호하게 운영되는 편입니다. 곳곳에서 아파트 비리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죠.

◈견제 없는 권력엔 반드시 부패가 생긴다.

지난 8월 인천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피트니스센터에 운동기구를 납품하는 회사에서 돈을 받고, 어린이집이 아파트 단지에 내는 보조금을 착복하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또 다른 아파트 입주자대표는 아파트 공사비를 부풀려 리베이트를 받아 경찰에 붙잡혔고, 주민들이 버린 재활용품 등을 판매한 수익금을 가로챈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는 동대표와 주민대표분들 정말 많을 겁니다. 하지만, 돈이 모이는 자리다 보니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입주자 대표, 소위 직업 동대표라는 분들도 못지 않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부정과 비리가 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느냐, 왜 적발되지 않느냐?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민 관리비로 경조사비를?

현재 아파트 관리비 사용과 관련해서 구체적 회계 기준과 항목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는 상황입니다. 주민들이 낸 관리비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 이 돈을 입주자 대표가 집행할 수 있는 항목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아파트 관리비를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의결만 한다면 누군가의 경조사비, 간식비로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전문가는 "현재 입주자 대표회의라는 곳은 불법을 합법으로도 만들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관리비라는 게 큰 아파트 단지의 경우 수십억 원에 달하다보니, 나쁜 욕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또, 공사가 이뤄질 때는 업체 선정을 위해서 로비가 벌어지죠. 때론 나쁜 욕심을 먹은 입주자 대표가 먼저 로비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입찰조건을 바꿔주는,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모습을 띄어서 특혜를 줬는지 잘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개입하기 꺼려하는 관공서가 비리를 키운다.
현금 관련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도 문제입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마땅한 증거라고 할 것이 있을 수 없고, 정황만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 조작과 비리는 은밀하게 이뤄지고, 입주자 대표 등이 관련 서류 등의 열람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서로 주장만 난무하는 이전투구로 변하기 십상입니다.

이럴 때 관공서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재해야 하지만, 지금껏 우리 관광서는 아파트 관련 문제는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라서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피해왔습니다. 개개인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 문제에 개입했다가 생길 혹시나 모를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관공서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 주민 간의 이전투구는 심해지고, 주민들은 더 무관심해지고, 그로인해 아파트 비리는 더 은밀하고 광범위해 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파트 비리가 심각해지자 정치권도 회계 감사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전자입찰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상임위에 상정도 못 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로서는 주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입주자회의 등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쁘다는 이유로,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대로 운영된다면 다행이지만, 과연 여러분은 아파트는 안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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