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조세정의 시리즈 - 정태수 추적기 ③

[취재파일] 조세정의 시리즈 - 정태수 추적기 ③
지질학자 B씨를 만난 건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백화점 앞이었습니다. B씨는 60대 남성으로 고려인이었습니다. 한국말을 하긴 했지만, 무척 서툴러 러시아어와 섞어 사용하더군요. B씨 사정으로 따로 시간을 내지는 못하고 B씨가 몰고 온 차에 타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B씨가 정태수 씨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쯤이었다고 합니다. 비슈케크의 한 식당에서 만났는데 당시 정씨가 키르기스의 한 광산에 대해 물어봤다고 합니다. 한 키르기스인이 광산을 정씨에게 백만달러에 판다고 하는데 그 정도 가치가 있냐고 자문을 해와, B씨는 솔직히 아는대로 "그 광산은 쓸모없는, 아무 가치가 없는 광산이다"라고 얘기를 해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정씨가 고맙다고 하면서 사례비로 1천 달러, 우리 돈으로 108만원 정도를 그 자리에서 바로 건넸다는 겁니다.

B씨는 자문 한번 해줬을 뿐인데 1천 달러나 줬다며 정씨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키르기스에서는 의사 한달 봉급이 6백달러, 우리 돈으로 65만원 정도에 불과한데, 한번 잠깐 만났는데 1천달러라는 거금을 줬으니 깜짝 놀랄만한 거죠. B씨는 당시엔 정씨가 누군지 몰랐는데 워낙 통 크게 돈을 써서 궁금해서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정태수 씨였다고 하더군요.

정태수 추적기_50
취재진은 이어서 한 교민을 통해 정씨에게 한약재를 공급했다는 S씨를 만났는데요, S씨는 콧수염을 길게 기른 50대 남성으로, 역시 고려인이었습니다. 평소 녹용이나 차가버섯 등 한약재를 팔며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정씨도 한약재를 팔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고 합니다.

S씨는 정씨를 '부자 노인'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씨를 처음 만난 건 비슈케크 도심의 아파트였는데, 당시 정씨는 손자와 고려인 의사를 대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병인 당뇨를 앓고 있어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고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는 증언입니다. 지난 2007년 출국 직전 재판받을 당시 정씨는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혹시 휠체어를 타지는 않았냐고 물어봤는데요, 정씨가 지팡이를 짚긴 했지만, 직접 걸어다니며 산책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할 정도로 상태가 괜찮았다고 하더군요.

당시 정씨는 당뇨에 곰 발바닥이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곰 발바닥을 구해달라고 부탁해 S씨가 시베리아에서 곰 발바닥 2개를 공수해와 선물로 줬다고 하더군요. 실제 그 곰발바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S씨 역시 정씨를 마지막으로 본 건 2년 정도 전이었습니다.

정태수 추적기_50
결국 정씨의 행방을 가장 잘 알만한 사람은 당시 정씨의 측근이었다는 현지 사업가 오모씨 밖에 없었는데요, 행방이 묘연하던 오씨와 겨우 전화 연결이 됐습니다. 오씨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씨가 금광 개발 사업에 뛰어들려고 상당히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고 말했습니다. 정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그때 비슈케크 아파트에서 살다가 광산이 많은 서북부 탈라스로 거처를 옮겼다고 증언했습니다. 탈라스로 간 뒤에는 자신도 연락이 끊겼다고 하더군요. 종합해보면 정씨는 키르기스에서 광산 개발 투자를 통해 재기할 기회를 노리다 다시 사라진 셈이죠.

이쯤에 이르러 취재진은 정씨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르기스에서 한인들은 대부분 수도 비슈케크에 모여 살고 탈라스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정씨 같은 고령의 한국인이 나타났다면 분명 눈에 띌 수 밖에 없어서였습니다.

결국 정씨의 최종 행선지가 탈라스였다는 게 확인된만큼 정씨가 은둔하고 있다고 소문이 났던 탈라스와 나른, 오쉬 중 선택지는 한 곳으로 좁혀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취재진은 금광이 많다는 키르기스 서북부의 산악지대 탈라스로 출발했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