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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장과 복지, 오스트리아의 선택은? (2/2편)

[취재파일] 성장과 복지, 오스트리아의 선택은? (2/2편)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참여한 방송기자연합회의 '유럽국가 복지시스템 연수' 프로그램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1/2편에서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복지 시스템을 소개해드렸습니다. [1편 클릭]

  정말 고민할 부분은 이제부터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내고, 더 받는" 복지 시스템. 과연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가능할까요?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가능했을까요? 단순히 돈이 많아서일까요?
 자신들의 복지 시스템을 설명하는 오스트리아 '노동과 사회문제 및 소비자보호부(Federal Ministry of Labour, Social Affairs and Consumer Protection)' 담당자들의 자신감은 대단했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오스트리아인과 재 오스트리아 한국 분들과 나눈 대화를 Q&A로 정리했습니다.

Q: 한국에서는 '복지확대가 우선이냐, 성장이 우선이냐?'는 논란이 있다. 오스트리아는 2012년 GDP의 29.1%를 사회복지분야에 투입했는데(한국 2010년 기준 10.17%), 그럼 경제 성장이 어렵지 않은가?

부르노

  A: 과거 부르노 크라이스키(Bruno Kreisky/위 사진/1970-1983년 재임) 총리의 말이 바로 오스트리아 사회복지 제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크라이스키 총리는 "보편적 복지를 위해 더 내는 사람과 덜 내는 사람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빈곤층, 실업층을 없애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어떤 가정이 경제적 위기 때문에 한 번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다시 중산층으로 돌아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 가정들이 많아지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복지 시스템의 목표이다. 현재 실업자 가운데 25%가 빈곤층인데, 이걸 12.6%까지 낮추려고 한다.

유럽 경제변화

<추가설명-실제 오스트리아 경제> 위 표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분기(1-3월)부터 2013년 1분기까지 유럽 주요국가의 GDP 변화를 보여줍니다. [스위스계 은행 PICTET 자료 클릭] 2008년 1분기를 100으로 볼 때 독일과 오스트리아, 벨기에만이 GDP가 늘었군요.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줄었습니다. 같은 독일어권으로 비슷한 복지시스템을 갖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GDP가 증가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반면, 또 다른 복지 강국으로 꼽히는 핀란드의 경제가 주춤하고 있군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경제 위기를 겪은 그리스, 스페인 등과 상대적으로 교역을 적게 하고, 대신 독-오 간 상호 교역을 많이 해서 함께 경제 위기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다시 말해, 복지 지출 규모가 크다고 경제 성장이 위축되는 것은 아니고, 또 반대로 복지 지출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경제 위기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복지 강국이라도 복지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시스템이 더 좋은지, 한국에 맞는지는 전문가 분들이 판단해주셔야 할 듯합니다.

Q: 한국에서는 그리스 경제 위기가 지나친 복지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어 무조건적인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A: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복지 제도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시장 관련 복지제도를 잘 운영해야 한다. 실업층과 빈곤층을 줄이고,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 시스템이 도와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근 근무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누는 정책들이 큰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하루 10시간, 주당 48시간 초과 근무가 금지돼 있다. 다양한 직종과 직업에 있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일한다.

오스트리아 근무시간

<추가 설명-오스트리아 일자리 나누기> 위의 표는 2011년 오스트리아 근로자들의 주당 근무 시간 분포입니다. 주5일 기준 매일 8시간 이상 근무하는 이른바 정규직은 남성이 30%, 여성은 11%입니다. 남녀 통틀어 가장 많은 비율(53%)은 주당 36-40시간 근로자입니다. 이들이 매일 7시간 정도 근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는 그렇지만, 상당수는 1주일에 며칠은 8시간 이상 풀 타임으로 일하고, 며칠은 2-3시간 파트 타임으로 다른 파트 타임 근로자와 함께 일을 합니다. 통상 파트 타임(part-time)은 주당 35시간 이하 근로자를 말합니다.
  즉, 일자리를 나누는 겁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은 전문가 분들에게 맡겨야겠네요.

A: 또, 오스트리아는 아래와 같은 해고 및 구조조정의 경우 기업체가 정부에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종업원 20-100명 사이 기업에서 5명 이상의 구조조정이 있을 때,
-종업원 100-600명 사이 기업에서 5% 이상의 구조조정이 있을 때,
-종업원 600명 이상 기업에서 30명 이상의 구조조정이 있을 때,
-50세 이상 종업원을 5명 이상 해고할 때
  정책 당국이 실업 상황을 인식하고,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이들의 빈곤층 하락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은 100인 이상 해고와 10인 이상인 종업원의 10%를 해고할 때만 신고하게 돼 있음.

Q: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가진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저항이 있지 않나?
A: 불만이 있지만, 사회적 공동체를 위해 '수평적 균형'이 필요하다는데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평적 균형이란,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위해,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는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걸 말한다. 
  실제 복지 재원 가운데, 정부 및 지자체의 예산은 35%, 근로자들의 보험료 등이 27%, 나머지 38%는 고용주들이 부담하고 있다. 고용주들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요즘 다국적 기업들을 중심으로 'EU 내에서도 오스트리아가 고용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고 불평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재원

<추가 설명-근로자 고용주의 복지 부담은?> 위의 또 다른 표를 보시죠. 임금 가운데 각종 복지 시스템을 위해 근로자와 고용주가 내는 비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부터 1)국민연금 2) 건강보험 3) 산재보험 4) 실업보험....12) 지방세까지 있는데요. 근로자는 자신의 임금 가운데 18.77-18.90%를 복지 재원으로 냅니다. 고용주는 29.20-33.56%로 더 많이 냅니다. 근로자와 고용주는 이밖에도 법인세나 근로소득세 등 추가 항목 세금들을 내야 합니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복지재원과 근로소득세, 각종 간접세까지 포함한 국민부담률(Abgabenquote)은 43%에 이릅니다. 쉽게 말해 임금에서 실제 손에 쥐는 것은 57%에 불과한 셈이죠.

Q: 지나친 복지가 취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지 않나?
A:
맞다. 월 최저임금을 1000유로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이하 직업들도 존재한다. 반면, 실업긴급구제수당과 다른 수당을 합치면 그와 비슷하게 받을 수 있다. 복지 수준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어느 나라나 고민이다.

Q: 현재 오스트리아 복지 정책의 고민은 무엇인가?
A:
1) 급속한 노령화 2) 소득양극화 3) 근로빈곤층 확대 4) 저임금 청소년근로 5) 잦은 이직으로 인한 단기근로자 양산 등이다.

Q: 복지 정책을 결정할 때 정당 간 갈등과 반목이 없나?
A: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1당과 제2당 어느 쪽도 과반을 넘지 못해 연정을 해왔다. 연합정부를 구성하면 내각의 각 부서 장관들을 제1당과 제2당이 나눠서 차지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토론은 있지만, 어느 정도 사전에 합의를 이끌어낸 뒤 정책이 입안된다. 이런 식의 '협의민주주의(konkordanzdemokratie)'는 오스트리아의 오랜 전통이다.
  또, '사회적 동반자 관계(Sozialpartnerschaft)'라는 독특한 사회적 제도가 있어 이를 통해 각종 이견을 조율한다.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와 기본 정신은 비슷합니다.) 여기서 결정된 것이 곧바로 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여져 정치권을 통해 법제화된다.

<추가 설명-오스트리아 사회적 동반자 관계>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가 한독경상학회에 용역을 의뢰한 보고서에 추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원문 클릭] 주요 사회적 이슈 때마다 연방수상을 위원장으로 하는 '동등 위원회(paritätische kommission)'가 개최됩니다. 1) 정부 측에서는 재무부 장관, 경제부 장관, 농림부 장관, 노동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하고, 2) 사용자 측은 연방경제회의소(WKÖ)와 농업회의소(LK)가 3) 근로자 측은 연방노동회의소(BAK)와 오스트리아연방노조(ÖGB)가 참석합니다. 산하에 경쟁과 물가위원회, 경제와 사회문제 위원회, 임금 위원회, 국제문제 위원회 등 4개 위원회를 운영합니다.

  오스트리아 복지 시스템의 기본 철학은 공동체 의식입니다. 우선, 개인의 부(富)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소속 사회의 기반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뤄낸 것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반대로 저소득층이 반드시 게으르고 멍청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는 생각도 필요합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잘 살아야만 자신 세대가 행복하고, 또 자녀 세대가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개별적인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 앞서 복지 시스템을 운영할 철학을 고민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복지 확대 과정에서 국론 분열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결국 복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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