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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다큐가 갖춰야 할 조건

[취재파일] '천안함 프로젝트' 시사다큐가 갖춰야 할 조건
지난 6일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메가박스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사 '아우라픽처스'에 상영중단을 통보했습니다. 메가박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 간 현장 충돌이 예상돼 부득이하게 상영을 취소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사회고발적 작품으로 유명한 정지영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고, 정 감독의 권유로 후배인 백승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메가박스의 상영 중단으로 최대 33개였던 상영 스크린 수는 6개로 줄어들었습니다. 곧 극장 상영을 접고, 온라인 VOD 서비스 코너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사실 주요 극장체인 가운데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받아준 곳도 메가박스가 유일했으니 무조건 비판만 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사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이 침몰된 당일 밤 저는 보도국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해군 함정이 침몰중'라는 뉴스가 들어왔을 때 "경비정인가?" 생각했습니다만, 곧 초계함이라는 소식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국방부를 출입했던 경험이 있어 초계함이 어느 정도 크기이고, 승조원이 100명 가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도국 간부들에게 사안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취재에 나섰습니다. 정말 슬프고, 또 안타까운 밤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즉각 정치부로 파견돼 천안함 사태를 취재했습니다. 천안함을 둘러싼 논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프로젝트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공정했나? 저는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사회가 끝난 뒤 백승우 감독에게 국방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는지 물었습니다. 감독은 "이미 국방부의 입장은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 충분히 나와있기 때문에 요청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의 의견도 이미 과거에 나왔던 것인만큼 국방부나 해군 쪽도 인터뷰 요청을 해서 영화에 담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방부와 해군이 인터뷰에 응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을 안겨준 군도 일부 책임이 있습니다.
두개 문

최근 무비 저널리즘(movie journalism)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죠. 언론이 다루지 않는 시사 이슈를 적극적으로 취재 제작하는 시사 다큐멘터리 장르를 말합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충분히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국내 민자사업에 투자한 '맥쿼리자산운용'의 실태를 지적한 '맥코리아'(2012년 10월 개봉/김형렬 감독),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과정을 되짚은 'MB의 추억'(2012년 10월 개봉/김재환 감독), 그리고 용산사태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을 조명한 '두개의 문'(2012년 6월/홍지유 김일란 감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영화는 모두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맥코리아는 최대 16개 스크린에서 3천600여명이 봤고, MB의 추억은 최대 12개 스크린에서 1만 5천여명이, 두 개의 문은 최대 25개의 스크린에서 7만 3천여명이 봤습니다. 극장들이 상영을 꺼렸을 것이고,  보수성향의 관객들의 비난도 있었을 겁니다.

저는 이런 시사 다큐멘터리들을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말 화제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보다 공정하고 세련된 작품으로 보수 진보 모든 관객들을 흡수해야 합니다. 또, 훌륭한 시사 다큐멘터리가 나오려면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좀더 열린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보이지않는

미국의 시사 다큐들은 어떨까요? 2012년 미군 내 성폭행 실태를 다룬 '보이지 않는 전쟁(The Invisible War). 성폭행 피해를 입은 전역 여군들과 현역 동성 성폭행 피해 남성 군인들, 그리고 군 인사담당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전직 군 수사관들과 장성들의 고백도 나옵니다. 의회 청문회 영상도 포함돼 있습니다. 제작자의 취재에 다양한 사람과 기관들이 협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 전미비평가협회 톱5 다큐멘터리에 선정됐습니다.

인사이드
  2010년 금융위기의 진실을 파헤친 '인사이드 잡(inside job)'. 전직 연방준비은행(FRB) 의장 등 금융계 및 정치계 거물들이 인터뷰에 응했고, 다양한 방송 영상과 사진이 제작에 제공됐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나오는 credit를 살펴봤습니다. 'clearance counsel(취재비밀유지 조언팀)' 리스트가 나오고, Production counsel(제작 조언팀)'에는 법무법인이 포함돼 있습니다. archival footage courtesy of(영상사진제공자)에는 다양한 국내외 언론이 언급됩니다. 제작에 사용한 자료의 출처도 data source라는 항목에서 나열합니다.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최고 다큐멘터리상과 미국감독조합 '탁월한 다큐연출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밖에 미국 내 자생 테러리스트들의 진실을 밝힌 '배터 디스 월드(better this world)'도 다르지 않습니다 . 이처럼 미국 시사 다큐멘터리들은 1)제작자의 치밀한 취재 2) 철저한 균형 감각 3) 세련된 편집뿐 아니라, 4)다큐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됩니다. 또, 이런 다큐멘터리 가운데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공정히 평가해주는, 즉 5) 중립적인 시상 제도도 갖춰져 있습니다.

  성급히 국내 시사 다큐멘터리들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이 먼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비판을 한다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그 어떤 작품보다 힘들게 제작되는 우리의 시사 다큐멘터리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담은 우리의 다큐들을 우리 관객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성장 과정을 거쳐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 제작을 돕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더 좋은 작품들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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