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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욱'하는 일본 다독거릴 방법은?

[데스크칼럼] '욱'하는 일본 다독거릴 방법은?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드라마는 세태를 여지없이 반영한다. 그래서 '대박' 난 드라마의 대사는 언제나 유행어가 된다. 대지진이 일어났던 2011년, 일본에서 가장 히트 친 드라마는 니혼TV의 '가정부 미타'였다. 막장 가정에 막장 가정부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막장 드라마지만, 마지막회 시청률이 40%를 넘었다.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자살한 가정에 일견 로봇 같은 희한한 가정부가 들어온다. 이 가정부는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한다. 심지어 살인이나 방화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쇼우치시마시타(承知しました)'다. 우리 말로 '알겠습니다'란 뜻이다. 이 말은 2011년 일본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미타열풍'에 대해 당시 일본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의 설정 자체가 일본사회의 구조적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가정부 미타'는 콩가루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현실감 없는 전개로 풀어가는 막장 드라마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미타라는 초인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다. 미타는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의 룰에 대신 저항하고, 내 입으로는 말하기 힘든 본심을 대신 말하고, 나는 쉽게 해낼 수 없는 위험한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꽉 막힌 일본사회의 스트레스, 무엇이든지 느리게만 처리되는 행정,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시원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갈구"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대지진을 경험하면서 자조와 체념의 무게에 짓눌린 일본인의 심정을 대변했고, '쇼우치시마시타'(알겠습니다)라는 말로써 소극적으로 분노와 반항을 표출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최고 유행어는 '배로 갚아주겠어(倍返し·바이카에시)'다. TBS가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방송하는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무렵 대형은행에 입사한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은행 내의 부조리한 업무행태와 파벌다툼, 권모술수에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그는 "부하의 공은 상사의 것, 상사의 실패는 부하의 것"이란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부도덕한 상사들에게 "당하면 당한 만큼 갚아주겠어!" "배로 갚아주겠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온순한 일본 샐러리맨들의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 ‘배로 갚아주겠다'는 이 대사는 원래 80년대 연인들끼리 나누던 농담이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선물을 받으면 화이트데이에 배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랬던 이 말이 지금은 복수와 응징의 대명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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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해 늘 순종적이고 양순한 일본인들이 최근 과격해지는 것 같다. 예전엔 보수우익 정치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그들은 냉정했다. 언론의 견제도 충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는 '한국에 배로 갚아주마'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귀찮은 이웃(한국)을 침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즘 들어 일본 언론은 부쩍 한국과 관련된 나쁜 뉴스가 있으면 의도적으로 키우고 교묘하게 비꼰다. 우리의 반일(反日)감정에 욱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은 확실히 변하고 있다. 그들이 달라졌다고 탓하기 전에 우리의 행동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미워도 아베 총리는 일본의 '대장'인데, 그를 대놓고 무시하면 그 나라 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다. 올 초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눈 딱 감고 아베를 정식 초대하는 게 뭐 그리 어려웠던 일이었는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도 일본과의 회담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회의장 자리 배치는 두 정상이 나란히 붙어 있으니 '밥 먹었느냐'는 인사말이라도 먼저 건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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