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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싱크홀? 지반침하?…명명의 사회학

[취재파일] 싱크홀? 지반침하?…명명의 사회학
올해 SBS의 한 프로그램에서 거리의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KTX 민영화에 몇 명의 사람들이 동의하는지, 그리고 KTX 경쟁 체제에 몇 명의 사람들이 동의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상하시다시피 민영화에는 절반 이상의 사람이 반대했고, 경쟁 체제에는 절반 이상의 사람이 찬성했습니다. 민영화든 경쟁체제든 본질은 달라지는게 아닌데 말이죠.
 
사람의 성격과 관련된 말들도 비슷합니다. 비슷한 성향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째째하다고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꼼꼼하다고 표현합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이 덤벙된다는 말로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고, 신경질적이다는 말이 민감하다는 다소 중립적인 표현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습니다. 명명의 사회학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집니다.

두서없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소위 '싱크홀'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얼마 전 서울 여의도 고등학교 앞 도로 일부분이 내려 앉았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이를 '싱크홀'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규모가 작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니 싱크홀'이라고 이름 붙인 언론사도 있습니다. '싱크홀'이라는 이름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싱크홀'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석회암 지대 등에서 지하 암석이 용해되거나 기존의 동굴이 붕괴되어 생긴 움푹 패인 웅덩이입니다.(두산백과사전) 말그대로 자연 작용의 의해서 발생하는 지형이라는 겁니다. 많은 경우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天災)'인거죠.

도심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의도 사고와 관련해서 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을 싱크홀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다는 단호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지반 침하', '도로 침하'하고 구별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사고 방지 등을 위한 대책 수립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뭐냐고. 대답은 또 간단했습니다. 도심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애초에 공사를 할 때 공사를 잘 하면 되고, 주기적으로 보수나 점검을 잘 해주면 된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너무도 허무한 이야기였습니다.

여의도 사고와 관련해 리포트를 하면서 저는 고집스럽게 '지반 침하'라는 명칭을 써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송사에서 '미니 싱크홀'이라고 방송이 나갈 때 SBS 8시 뉴스에서는 '지반 침하'라고 방송됐습니다.

지반 침하


사실 '지반 침하'라고 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표현은 결코 아닙니다. '싱크홀'이라는 뭔가 신비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표현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지반침하라는 말보다는 싱크홀이라는 말에 고개가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언론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미니 싱크홀'이다거나 '싱크홀 현상'이라는 등 굳이 '싱크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그런 현상 혹은 사고를 막아야할 행정 관청에게 면죄부를 주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인재적 성격으로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싱크홀'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마치 예방할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시청자나 독자가 인식하게 되면서 책임을 면하게 해주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싱크홀'이라는 명명 때문에 예방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또 스스로도 '도로침하'를 '도로침하'라고 부를 수 없게 되는 홍길동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째째하거나 혹은 꼼꼼한 마음에 드는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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