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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CJ 회장 석방이 불편한 이유

[취재파일] CJ 회장 석방이 불편한 이유
CJ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지 한 달 반만에 풀려났습니다. 법원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CJ 측에서 회장 개인의 사생활을 노출시키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건강 상태를 밝힌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리 저리 각 방향으로 취재를 해봐도 이재현 회장이 심각하게 아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번 사건만 놓고 보면 재판부의 구속집행 정지 결정은 타당해 보입니다.

(구속 전에는 멀쩡하다가 수감 이후 굳이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던데, 구속 전에는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왔고 음식 조절 등이 가능했지만, 수감 이후에는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건강하던 사람도 버티기 힘든 구치소 생활인만큼, 수감 이후 건강이 악화됐다는 주장 또한 엄살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형평성입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재벌 총수들은 줄줄이 구속집행정지 또는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이 그렇고, 태광 이호진 회장이 그렇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구치소에서도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K 최태원 회장 정도입니다.(최 회장은 1심 선고 후 법정 구속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구속 피고인들의 1심 사건 중 구속 집행 정지 비율은 2011년 기준 1% 정도입니다.(2만 8천 325명 중에 260명) 구속 피고인 중에 정말 아픈 사람의 비율은 아마 1%는 넘을 겁니다. 일반 사회인 가운데도 건강 상태가 수감 생활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좋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1% 보다는 더 높을테니까요.(2006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암, 급성심근경색, 뇌줄중 등 중병 환자 비율은 전 국민의 4%) 건강 관리가 힘든 구속 피고인들의 경우 아픈 사람이 더 많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1%의 경우에만 구속 집행 정지를 허가해주고 있습니다. 구속집행정지는 재벌 회장 같은 '범털'이 아닌 평범한 피고인에게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행운'인 셈입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요? 법원이 아직도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를 감안해 재벌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필부들과 달리 재벌 회장들은 자신들의 건강 상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는 여러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대부분 검사, 판사 출신 전관들)의 전화 공세, 최고 권위 의료인들의 진단 결과, 건강 상태를 신문과 방송에 알려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영향력 등 등...... 이들 중 어떤 것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가장 주효했는지는알 수 없지만, 모두 평범한 구속 피고인들은 동원할 수 없는 특별한 수단입니다.

군대 있을 때 열외하는 친구들이 참 미웠습니다.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다 열외할 만한 이유가 있는 동료들인데도 곱게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군 생활 하면서 아픈 곳 없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내놓고는 말을 못해도 열외자들을 보면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J를 비롯한 재벌 회장들의 석방을 보는 국민들의 심경도 딱 그런 셈일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1%의 확률밖에 없는 혜택을 너무나 수월하게 줄줄이 받아 챙기니까요. 아프면 치료 받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CJ 회장의 석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글을 끝내겠습니다. 언론은 항상 1보에 관심을 갖고, 이후의 속보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3개월 구속집행정지를 얻었다고 다들 기사를 썼지만, 3개월 뒤 만약 집행정지가 연장되더라도 지금만큼 관심을 갖는 곳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지금은 정말 수술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해서 집행이 정지됐지만, 그 이후로 연장이 될 것인지, 또 연장이 된다면 무슨 이유에서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재벌들도 '욕 한 번 먹고 지나가면 된다'는 식의 발상을 하지 못하게 되겠죠. 참고로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지난 1월 구속집행이 정지된 뒤,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3차례 집행정지가 연장돼 11월까지 풀려나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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