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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수욕장의 음흉한 시선…'몰카' 비상

[취재파일] 해수욕장의 음흉한 시선…'몰카' 비상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드넓은 백사장과 넘실거리는 파도,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싱그러움. 우리가 손가락 꼽아가며 휴가를 기다리고, 꽉 막힌 고속도로를 감내하면서까지 힘들게 바닷가를 찾아가는 이유이다. 파도에 몸을 던지며 우리는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무더위를 잊고, 자유를 만끽한다.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어느 누구의 불편한 시선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어쩌면 그런 순간을 위해 우리는 힘들고 지겨운 일상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 여성 박 모 씨도 휴가를 맞아 지난 3일 친구와 함께 강릉 경포 해변을 찾았다. 자유와 여유를 맘껏 누리리라는 부푼 기대 속에 파라솔을 빌려 짐을 풀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묶고, 태닝을 위해 오일을 바르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SNS로 지인들과 공유했다. 주위를 의식할 필요도 없이 자신들만의 오붓하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유롭고 유쾌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양경찰의 설명을 듣고 여름해양경찰서를 찾았다. 그곳에서 마주한 40세의 외국인 A씨. 해경이 압수한 A씨의 디지털 캠코더에서 박씨는 자신과 친구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확인했다. 자신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촬영된 5분 분량의 동영상에는 A씨가 캠코더의 줌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비키니를 입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A씨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해경은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아온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수욕장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이른바 '해변 몰카' 사범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해양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0명이던 몰카범이 지난해에는 12명으로, 올해는 벌써 20명까지 증가했다. 특히 외국인이 크게 늘고 있는데 2년 전 4명에서 지난해 9명, 올해는 15명으로 증가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거나, 또는 피해 사실을 알고도 수치심에 굳이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신고를 기피하는 여성도 많기 때문에 실제 해수욕장 몰카 피해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몰카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사진일까? 바닷가에서 기념사진 남기는 것조차 신경 써가며 조심해야 하는 건가? 약간의 모호함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먼저 법 조항을 살펴보면 몰카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근거해 범죄가 된다. 14조 1항에는 몰카범을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했는데 그 사진이 성적 욕망을 일으키게 하거나 수치심을 유발할 경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수만 명의 피서객이 전부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의 의사를 일일이 확인해 가며 사진을 찍으란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쏙 빼고 나와 내 일행들의 모습만 사진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불만이 쏟아질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사실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법 조항에서 규정한 대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는 행위를 도저히 저지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경찰은 법률 조항 외에도 상식과 촬영 의도, 주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해변이라는 공개된 장소에 피서객들이 빽빽이 밀집해 있는 불가피한 측면을 감안해 자신의 일행과 무관한 사람, 특히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얼마나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촬영됐는지, 신체의 특정부위를 클로즈업해서 담지는 않았는지 등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활용한다.

경찰은 몰카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될 경우 주저하지 말고 신고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고 현장에서 대응하거나, 당장의 수치심 때문에 참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경찰에 신고해야 범죄 여부를 신속히 판단하고 앞으로 있을 추가 범죄를 예방하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몰카는 어쩌면 사진 촬영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아주 무겁다. 우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유죄가 확정된다면 몰카범은 성범죄자로 분류돼 신상정보가 공개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은 물론 얼굴 사진까지 20년간 보존된다. 몰래 촬영된 사진은 언제든 인터넷을 통해 널리 유포되고 악용돼 또 다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몰카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행위로 치부할 수는 없다. 힘든 일상을 견디며 기다려 온 여름휴가, 무더위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러 떠난 피서지에서조차 '몰카'라는 공포와 스트레스를 마주해야 한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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