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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군표가 몰랐던 '사불삼거(四不三拒)'

[데스크칼럼] 전군표가 몰랐던 '사불삼거(四不三拒)'
고시에 합격하면 5급 사무관에서 공직을 시작하는 것처럼, 과거제도를 통해서 등용되던 조선의 관직은 종9품에서 정1품까지 모두 18계단이었다. 이 가운데 종6품 이상은 참상관(參上官)이라 했고, 정3품 이상은 당상관(堂上官)이라 했다. 적어도 참상관이 되어야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고, 당상관이어야  주요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품계 조차 없는 하급 서리(胥吏)도 있었는데, 이른바 아전(衙前)이다. 지금으로 치면 고시가 아닌 일반 공무원 시험을 통해 관직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중인들이었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팽(金壽彭)은 '전설의 아전'이다.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호조 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대죄를 청했다. 그는 "죽을 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 달라"고 간청했다. 판서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조선의 방외지사(方外志士)'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한번은 영조가 한밤 중에 내탕고(궁궐의 금고)에서 급히 2만냥을 지출하여 들여보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김수팽은 이를 듣고도 '아무리 급해도 절차는 지켜야 한다'며 일부러 느릿느릿 움직였다. 여기저기 소속 관장의 집을 찾아다니며 결재를 받다보니 어느 새 새벽녘이 됐다. 김수팽이 왕궁으로 들어오자 2만냥을 들이라는 명령이 취소됐다는 전갈이 왔다. 사정을 알고 보니, 영조가 밤중에 한 궁녀에게 빠져 2만냥을 내리려 했던 것을 날이 밝고 다시 생각한 끝에 명을 거둔 것이다.

김수팽은 비록 품계도 없는 하급 관리였지만, 조선 관료사회의 불문율이었던 '사불삼거(四不三拒)'를 생활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사불(四不)이란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로,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또 삼거(三拒)는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로,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경조사의 부조다. 고관대작도 곧잘 무시했지만 미련스럽게 지킨 사람도 있었기에 조선의 국격이 유지됐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검찰에 또 출두했다. 지난 2007년 현직 국세청장이었던 그는 부하 직원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엔 2006년 CJ그룹 세무조사와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해 주고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받기 위해 소환됐다. 그가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난 관심없다. 그것은 사법 당국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개인적으로 민망한 것은 두 경우 모두 부하 직원으로부터 '상납진술'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평소 처신이 어떠했길래 부하가 돈을 들고 올 생각을 다 할 수 있었을까? 국세청장이면 조선시대 호조참판 정도는 됐을 직급이다. 그의 부하 중에 김수팽 같은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이런 망신은 당하지 않을텐데… 김수팽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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