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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아공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다시 일어나나?

[취재파일] 남아공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다시 일어나나?
▲  ‘부고’기사를 준비하다…

부고 기사를 준비한 건 지난 해 12월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폐감염증 재발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94세라는 고령을 감안해, 타계할 경우 언제라도 방송할 수 있도록 ‘예비- 만델라 사망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만델라가 퇴원하면서, 당시 이 예비 기사는 ‘다행스럽게도’ 방송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8일, 국제부는 또 한 번 ‘만델라 사망시- 예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폐감염증 재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만델라의 가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 뿐 아니라 간과 신장 기능도 절반 이상 정지돼 가족들이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정부가 어떻게든 만델라의 꺼져가는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집권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당의 상징과도 같은 만델라 없이, 내년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만델라가 입원해 있는 동안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병원을 여러 차례 드나들며 자신과 만델라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만델라가 입원중인 병원 밖에는 주마의 얼굴을 옆면에 크게 붙인 아프리카 민족회의 소속 버스가 지지자들을 싣고 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선거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지현 취파용

▲ 병상서 맞은 95세 생일

그리고 만델라는 7월 18일, 95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비록 병상에 누워서 맞은 생일이고, 모습도 공개되지 않았지만, 만델라의 딸 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놀라운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진지 만델라는 “최악의 상황을 준비했던 걱정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 아버지는 매일매일 우리를 놀래킨다.”며, “어제 오후에는 헤드폰을 끼고 TV를 보셨고, 활짝 미소를 지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남아공 정부가 밝혔던 ‘위독하지만 안정적인 상태’가 ‘위독’보다는 ‘안정’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만델라의 95번째 생일, 프리토리아의 병원 앞에는 하루 종일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전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오전 8시에 맞춰 일제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남아공 국민들은 만델라를 ‘마디바’(존경받는 어른), ‘타타’(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전 대통령’이라든지 ‘전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 같은 특정 ‘직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만델라는 남아공 국민들에게 그런 존재이지요. 95세 생일에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 타타..마디바..만델라
    
한 인간이 사회를, 세상을, 사람들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만델라의 삶은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1918년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롤리랄라’라는 이름으로 자라던 만델라는 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넬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법학을 공부하던 만델라는 남아공의 흑백 차별 현실에 눈을 뜨고 ‘교육받은 검은 영국인’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안락한 삶 대신 흑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회의 청년동맹을 결성하고 흑백 차별 철폐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1952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들로만 이뤄진 법률 회사를 세우고, 흑인들의 ‘방패’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에 비례해 백인 정권의 만델라 압박도 거세졌습니다.
  
조지현 취파용
1961년 이후 만델라는 본격적인 지하활동을 벌입니다. 경찰이 체포하고 싶은 인물 1순위였고, 교묘히 체포를 피해 다녀 ‘블랙 핌퍼넬’(프랑스 혁명 때의 영웅을 그린 소설 ‘스칼렛 핌퍼넬’에서 따온 말)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비폭력 노선에서 무장 투쟁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군사조직 ‘국가의 창’을 만들어 최고사령관을 맡고, 정부 시설을 상대로 폭파 공격을 벌였습니다. 에티오피아와 모로코에서 군사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만델라의 무장투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죄수번호 466-64, 로벤 감옥으로

“ … 감옥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날마다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어
나쁜 것은 극복하고 좋은 것은 무엇이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오.”
- 1975년 위니 만델라에게 보낸 편지( ‘나 자신과의 대화’ 中)

“또다시 사랑하는 엄마가 붙잡혀 가
이제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멀리 감옥에 있구나.”
- 1969년 딸들에게 보낸 편지 (‘나 자신과의 대화’ 中)


 
1962년 경찰에 체포된 만델라는 2년여간의 재판 끝에 1964년 6월 12일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혐의는 국가 전복 기도.  46살의 만델라는 로벤섬의 철창 안에 갇힙니다. 만델라의 고질적인 ‘폐 감염’은 바로 당시 로벤섬의 노역에서 비롯됐습니다. 13년동안 석회석 채석장에서 일하며 얻은 폐병이 말년의 만델라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27년의 복역기간 동안, 만델라는 어머니와 큰 아들을 잃었고, 만델라의 가족들에 대한 탄압도 계속됐습니다. 동시에, 남아공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만델라 석방 요구가 거세졌습니다.

“… 교도소 담장 안에서도 지평선 너머에 펼쳐진 짙은 구름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생전에 저 햇살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 일은 우리 조직의 힘과 우리 국민의 굳은 결의에 의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 감옥에서 쓴 미출간 자서전 원고 (‘나 자신과의 대화’ 中)


 
1990년 2월 11일, 만델라는 27년간의 복역 끝에 석방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데 클레르크는 만델라를 비롯한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합법화했습니다. 그리고 석방 이후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에 선출된 만델라는 정부측과 협상을 시작합니다. 협상은 어려웠지만, 결국 흑백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1992년 국민투표를 거쳐 폐지됐습니다. 그리고 이 공로로 만델라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습니다. (클레르크 대통령도 함께요.) 이듬해인 1994년에는 흑인이 참가한 첫 투표를 통해 남아공의 첫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총선일이 다가오자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원로 지도자 세 명이 조직 내에서 널리 의견을 물어
선거에서 이기면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렸다고 한다….
… 나는 세 원로 지도자에게 말했다. 조직이나 정부에서 어떤 자리도 맡지 않고
그냥 봉사하는 게 더 좋다고.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가 완전히 내 입을 막아버렸다.
… 하지만 한 번만 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서 얼마 안되어
나느 오직 한 번만 대통령을 할 것이고 따라서 재선이 되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속편 미완성 원고 (‘나 자신과의 대화’ 中)

조지현 취파용
 

 
▲ 화해와 통합의 상징

핍박받던 음지의 주인공이 권력을 잡았을 때, 다음 순서로 쉽게 ‘복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만약 만델라가 그 길을 택했더라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전 대통령’일 수는 있어도 오늘의 ‘마디바, 타타’, 전세계가 존경하는 영웅은 없었을 겁니다. 만델라는 복수 대신 ‘화해’의 길을 택했습니다. 복수의 마음을 갖는 한, 자신은 영원히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과거 백인들의 만행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며 흑인들을 다독였고, ‘진실 화해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과거 인권 침해 행위를 조사하고 공정히 처벌하고 과감히 사면했습니다. (만델라의 부인인 위니 만델라도 조사 대상이었을만큼 조사에 성역은 없었습니다.)

 ‘흑백 차별 철폐의 상징’인 동시에 ‘사회 통합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지금껏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왔듯, 이번에도 불사조처럼 일어나기를 남아공 국민들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 감옥에서 심히 걱정했던 것 하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바깥 세상에 투사한 허상,
내가 성인(聖人)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며,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세속의 정의를 따르더라도 아니다. “
- ‘자유를 위한 머나먼 길’ 속편 미완성 원고 (나 자신과의 대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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