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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사라진' 대화록과 '무오사화 시즌2'

[데스크칼럼] '사라진' 대화록과 '무오사화 시즌2'
조선 성종 때 학자 김종직이 희한한 글을 썼다.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의제(義帝)를 조문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제목도 조의제문(弔義帝文). 그런데 단순한 조문의 글이라기엔 좀 야릇하다. 분명 의제를 조위하는 글인데. 수양대군(세조)과 단종이 자꾸 연상되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의제에 비유함으로써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했다. 세조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예종, 성종, 연산군 등도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참가한 훈구 대신들 역시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본 사람이 없어서 당시에는 별일이 없었다.     

엄청난 사단은 그가 죽은 다음에 벌어졌다.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이었다. 편찬 책임자는 이극돈. 그는 실록 편찬을 위한 사초(史草)를 검토하다가 반대파의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에 자신의 비행(非行)이 기록돼 있음을 발견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근간인 사초는, 8명의 사관이 궁중에서 교대로 숙직하며 조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사와 회의에 참석해, 국왕과 신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적은 기록물이다. 녹화장비가 없었던 시절 인물들의 표정이나 언동을 마치 사진을 찍듯 상세하게 기록했다. 한번 작성된 사초는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 김일손에 대해 앙심을 품은 이극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는데, 이윽고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기록한 사실을 발견한다.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이유로,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하기 위해,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不忠)의 무리로 몰아간다. 사초의 내용은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에게 귀띔해 대규모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戊午史禍)다. 사초가 발단이 돼 일어난 조선시대 최초의 사화다.
정상회담대화록대통령
역사는 정말 반복되면서 진화하는 것일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지금 무오사화의 도화선이 된 사초처럼 돼 버렸다. 당쟁을 위해 금기를 건드렸던 것처럼, 절대 공개해선 안되는, 설사 봤어도 결코 말해선 안되는 내용을 발설하고 공개하면서 '무오사화 시즌2'가 된 것이다. 민주당이 국정원의 '비행'을 꼬집자, 국정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으로 '장군'을 불렀다. 여기까진 시즌1이다. 무오사화는 그냥 이 대목에서 게임 끝이었는데, 시즌2의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고 반격을 가했다. 차제에 회의록과 그 부속 자료 원본을 직접 보자고 '멍군'을 불렀다.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으니 원본과 함께 부속 자료까지 공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의가 'NLL 포기'가 아니었음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국민이 보기엔 '장군' '멍군'이 아니라 서로 '쪽박' 깨자고 달려드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참고 봤다. 그런데 지금 그 끝이 희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의 원본 대화록이 없단다. 못 찾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없애 버린 것인지...말들이 많다. 과거 무오사화 때는 그래도 사건의 진행이 단순하고 명쾌했다. 지금은 더 지능적이고 교활하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아니 어떻게 조선조 사초에 해당하는 대화록이 없어질 수가 있는가? 5백년전 사관들도 목숨을 걸고 지켜온 사초일진대 이 시대에 어찌 원본 대화록이 없다고 할수 있느냐는 말이다. 대화록은 존재해야 한다. 무조건 있어야 한다. 못 찾는 것이라면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고, 어떤 이유에서건 만일 없다면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말 국민을 졸(卒)로 봤다는 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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