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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산사태 키운 임도 (林道)

[취재파일] 산사태 키운 임도 (林道)
강원도 홍천군 원동리. 벼와 인삼, 감자, 옥수수 농사를 짓고 봄가을로 산나물과 버섯, 약초를 캐며 살아가는 강원도 중산간의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 마을에 끔찍한 수해가 닥친 것은 지난 14일 오전이었다. 갑작스레 퍼부은 집중호우에 산사태가 나고 흙더미가 쏟아지면서 아흔 두 살의 노인 한 분이 매몰돼 숨지고 가옥 13채, 농경지 10여 헥타르가 잠정 피해를 입었다.

손써볼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새 들이닥친 흙더미와 급류에 그저 목숨을 구한 것만도 다행이라며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비가 그치고 하나 둘 마을의 피해를 살펴본 주민들은 산사태가 많이 발생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고 마을 뒷산에 놓인 임도에 의심의 눈길을 돌렸다. 주민들은 산에서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흙탕물과 함께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 뒷산 중턱에는 2010년 산림청에서 개설한 임도(林道)가 있다. 산림을 경영하고 산불 예방과 진화에 대비하기 위해 6킬로미터 정도 길이에 폭 3미터 남짓한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마을주민과 이 임도를 살펴본 결과 곳곳에서 사면이 붕괴된 것을 확인했다. 사면 붕괴는 좁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는데 취재진이 확인한 것만 1.2킬로미터 구간에서 10여개에 달했다. 이 임도에는 일반적으로 절개지 바로 아래쪽에 빗물이 흐르도록 설치하는 배수로도 없었다. 이 마을과 직선거리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도 임도 가장자리가 무너져 산사태와 이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 마을의 임도는 개설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장을 둘러본 산림토목 전문가들은 임도가 일부 산사태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임도와 연결된 산사태가 모두 임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임도에서 시작된 사면붕괴가 산사태로 이어진 곳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개설한지 얼마 지나지 않는 새 도로일수록 산사태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산사태는 일반적으로 산의 토질과 경사도, 토양 속 암반, 수목의 밀도와 종류, 집중호우의 강도와 토양의 수분 포화도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오랜 세월 안정화 과정을 거친 자연 상태의 산 보다는 인간에 의해 파헤쳐진 임도가 산사태 위험이 크다고 한다.  

임도는 산의 지반을 깎아내고 그 흙을 바깥 쪽 경사면에 쌓으면서 개설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산을 깎아낸 절개지도 산사태에 취약하지만 더 위험한 곳은 흙을 쌓은 성토구간이라고 한다. 임도의 폭 가운데 대체로 2/3정도는 원래의 지반이기 때문에 안정돼 있는 반면 나머지 1/3 정도는 깎아낸 흙을 쌓은 성토 구간이라 연약하다. 이 성토 부위와 그 아래쪽 사면이 안정화되려면 오랜 기간동안 적당한 강도의 비가 내리고, 도로가 하중을 받아 단단히 다져지고, 식물의 뿌리가 자라 지탱해 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신규 개설 임도는 그렇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이 때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원래의 안정 지반과 성토 지반의 틈 사이로 빗물이 유입되고, 집중호우가 지속돼 토양이 빗물을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는 포화상태가 되면 지지력을 잃고 조금씩 붕괴가 진행된다. 사면 붕괴가 지속 확대되면 산사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또한 임도 개설 과정에서 베어진 나무도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위험요인이 된다. 도로를 만들면서 많은 나무를 베어내는데 경제성이 좋은 나무는 자원으로 활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무는 임도 근처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이 나무더미와 잔가지가 물을 흡수해 무거워지고, 산사태와 맞물려 계곡으로 흘러가면 산 아래 마을까지 떠내려간다. 이 나무들은 하천 다리를 막고, 흐름이 막힌 물줄기는 다리 주변의 둑을 터뜨리며 농경지로 흘러간다. 실제로 이 두 마을에서는 많은 나무가 다리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산사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성토 구간은 줄이고, 최대한 기존 지반을 활용해 임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배수로는 여유 있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임도 바깥쪽 사면은 계단식으로 만들어 작은 붕괴가 큰 산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형과 토질, 수목의 종류와 상태를 고려해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 위험이 큰 지역에는 계곡 부위에 사방댐을 건설해 대비해야 한다. 

임도는 산림자원을 가꾸고 활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다. 특히 목재 수급률이 15% 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로서는 산림경영을 위해 더더욱 중요한 시설이다. 최근에는 산림의 휴양, 치유 기능까지 부각되면서 임도를 활용한 다양한 레저 활동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면 반드시 개선해야할 과제인 것도 사실이다. 산림당국과 전문가들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국민들은 산림의 가치와 수많은 혜택을 더욱 소중하고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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