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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벤 버냉키는 왜 말을 바꿨나?

美통화당국의 고민..양적완화 끊기의 어려움

[월드리포트] 벤 버냉키는 왜 말을 바꿨나?
다소 극적인 말 바꾸기..그래도 '반색'한 시장

지난 10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릿지에서 열린 전미경제연구소(NBER) 주최 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준의 첫 100년 : 정책기록과 교훈. 그리고 미래전망'을 주제로 강연했다. 당일 증시가 이미 장을 마친 시간이었지만 월가의 눈과 귀는 그의 입으로 다시 집중돼있었다.

"현재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의 재정정책도 매우 제한돼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연준의 높은 수준의 통화확장 기조가 당분간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사실상의 말 바꾸기였다. 불과 20여일 전 "미국 경기가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올 연말부터 양적완화의 축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던 벼락같은 언급을 뒤집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아시아 증시가 당장 급등했고 그 여파는 다시 다음 날 뉴욕과 유럽증시로 이어졌다. 뉴욕증시는 또 한번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버냉키는 이날 더 나아가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장친화적(?) 전망을 구체적으로 말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연준이 목표한 수준인 6.5%까지 내려가도 기준금리가 자동적으로 인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준금리 인상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올 상반기 최대 악재를 만들었던 버냉키는 시장이 그리던 말들만 골라서 해준 셈이다.

美 통화당국의 드러내지못한 속사정은?

버냉키 의장이 지난 달 19일 미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직후 미국 출구전략의 일정을 제시한 것은 아마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배경이었다는게 정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유동성 장세'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너무나 컸던 시장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극도의 불안감을 보였고 오히려 주가 급락과 금리인상의 충격을 불렀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사실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는 이미 예견된 변수다. 매달 85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이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이 내년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한 투자자는 얼마나 될까? 시장이 두려워한 것은 양적완화 축소가 아닌 금리인상이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버냉키 의장의 출구전략에 대한 '구체적' 일정 언급은 월가에선 이미 선물가격에 반영된 미 국채금리 인상 시점도 예상된 2015년에서 2014년으로 당겨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키웠던 것이다.

"연준의 정책을 미리 설명하는 것은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또한 향후 정책경로를 미리 설정하는 이런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이제 국제적 관행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캠브릿지 연설에서 버냉키는 전 달의 자신의 언급을 변호하는 모양새의 보충설명까지 내놓았다. 결국 시장의 반응이 연준의 예상과 달랐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6월26일자 월스트릿 저널은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일정 제기를 작심한 듯 비판했었다.

"버냉키는 양적완화 일정을 미리 제시함으로서 출구전략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를 변화시키려고 했었지만 이런 정책은 수행하기 매우 어렵다."  결국 버냉키의 'QE tapering'(양적완화 축소)' 일정제시는 시기상조였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1) 투자자들이 버냉키의 발언을 금리인상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확대해석했다는 점, (2) 미 연준이 금융시장의 반응 함수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월가는 주요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연준이 강조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의 개선 여부보다는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통화당국은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뉴욕증시


부작용 서둘러 진화? 美 Fed 전체가 나선 이례적인 소통정책

버냉키 의장이 말을 뒤집기 전 연준의 고위인사들은 수차례에 걸쳐 출구전략은 경제상황에 기반에 시행될 것임을 애써 강조하고 나섰다. 이런 풍경 또한 절대 권위의 연준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연준이 놀랐던 것은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장금리가 급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미약한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흐름인 것이다. 오죽하면 연준의 고위 인사 2명이 잇따라 '양적완화가 종료된 이후에도 단기금리는 여전히 제로수준에서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이후에 이어진 발언들을 살펴보자.

"금리인상 조기화 예상은 연준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됐으며 최근 금융시장의 반응은 이성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는 것이다" (6월27일,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 '파웰' 연준 이사, '록카트' 애틀랜타 연준 총재)

"양적완화 축소는 최근의 고용지표만이 아닌 지난해 9월 이후 변화된 경제의 개선추세를 근거로 할 것이며 양적완화를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기대 수준 이하에 머무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만큼 아직은 이르다고 본다" (6월28일, '스턴' 연준 이사, '윌리엄스'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

"만약 노동시장 환경이나 경제성장 모멘텀이 연준의 예상보다 약할 경우 자산매입 규모는 더 확대되고 기간도 늘어날 수 있다" (7월 2일,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

결과적으로 양적완화 축소의 구체적 일정을 제시함으로서 월가의 과도한 기대심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없앤다는 버냉키 의장의 의도는 보기좋게 빗나간 셈이다. 미국 통화당국은 시장금리의 선제적 인상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월가에서 나오는 좀 더 과장된 표현은 "월가는 지금 돈 풀기의 마약에 중독돼있고 약을 끊기엔 의지가 안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 된 것일까? 버냉키 의장의 입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뉴욕증시와 한국 등 아시아 증시를 보면 이런 불안은 더 커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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