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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계 첫 비행', 라이트 형제 아니라 '화이트헤드'?

'인증 동영상'만 있었어도…

[취재파일] '세계 첫 비행', 라이트 형제 아니라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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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첫 비행은 라이트형제?


이 장면, 언젠가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시죠?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역사적인 비행 장면입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은?’이라는 질문에는 초등학생들도 ‘라이트 형제’라고 답할 겁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라이트 형제의 역사적 비행기 ‘플라이어 1호’를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제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은?’ 이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라이트 형제’라고 답하기 곤란해졌습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가 내놓은 법안 때문인데요, 먼저, 사진 한 장을 보실까요?
조지현 취재파일

* 美 코네티컷 주 “첫 비행, 라이트 형제 아니다”

코네티컷 주지사는 현지시간으로 어제(26일) “세계 첫 비행의 주인공은 구스타프 화이트헤드”라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라이트 형제보다 2년 빠른 1901년 코네티컷 주에 살던 구스타프 화이트헤드가 ‘첫 동력 비행기’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인정한 겁니다. (구스타프 화이트헤드 홈페이지에는 ‘first manned, powered, controlled, sustained flight’라고 표현돼 있습니다.) 구스타프 화이트헤드는 위 사진 속 인물인데요, 비행기의 이름은 ‘No.21, condor’라고 합니다. ‘독수리(condor)’라는 이름처럼 새를 닮기도 했고, 박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구스타프 화이트헤드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습니다. 인류 첫 비행이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고요. 화이트헤드가 라이트 형제(1903년)보다 2년 빠른 1901년 8월 14일, 코네티컷 주 페어필드에서 첫 동력비행에 성공했다는 내용은 250여개의 신문 기사로 남아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화이트헤드는 고도 15미터 정도로, 약 2.4킬로미터를 날았다고 합니다. 시간상으로 몇 초나 날았는지는 표현돼 있지 않습니다.(참고로,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160미터 높이를 59초 동안 날았습니다.)

조지현 취재파일


* ‘비행 인증 동영상’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화이트헤드’의 ‘성공적 비행’을 증명할 자료, 즉 ‘동영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와 사진을 근거로 역사학자들이 ‘첫 비행의 주인공은 화이트헤드’라고 주장했지만, ‘화이트헤드의 성과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반론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증언’과 ‘기사’, ‘몇 장의 사진’외에 무엇으로 ‘비행’을 증명할 수 있냐는 거죠. 요즘 흔히 말하는 ‘인증샷’, ‘인증 동영상’이 이렇게 아쉬울 때가 또 있을까요. 화이트헤드를 지지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화이트헤드의 설계대로 복제품을 만들어 비행 실험을 하는 등 화이트헤드의 성과를 알리려는 노력이 지난 몇 십년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조지현 취재파일

* 그런데 왜 코네티컷 주가 나섰을까?

그저 ‘주장’으로 묻힐 뻔한 화이트헤드의 첫 비행은 지난 3월, 항공업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책인 ‘제인의 세계 항공의 모든 것’이 “라이트 형제도 맞지만, 비행은 화이트헤드가 먼저였다”는 편집자 의견을 내면서 힘이 실렸습니다. 

여기에 미국 코네티컷 주의 이해관계도 맞아 떨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라이트형제가 비행에 성공했던 노스 캐롤라이나 주가 ‘첫 비행 성공지’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 화이트헤드가 살았던 코네티컷 주는 이게 못마땅했던 거죠. 그래서 결국 ‘세계 첫 비행은 라이트 형제가 아니다’는 내용의 법까지 내놓게 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 화이트헤드는 누구?

조지현 취재파일
여기서 새로운 주인공인 ‘구스타프 화이트헤드’란 인물이 궁금해집니다. 라이트 형제야 워낙 알려져 있지만, 화이트헤드는 처음 듣는 이름이니까요.

화이트헤드의 출생지는 미국이 아니라 독일입니다. 교량 건설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화이트헤드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새를 가지고 실험도 해보고, 비행기 모형도 만들고, 직접 만든 날개를 달고 지붕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13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기계제작업자 밑에 도제교육을 받으러 들어갑니다. 이 때 엔진 제작에 대해 배우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1988년~1890년 무렵, 화이트헤드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에 온 뒤 ,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화이트헤드가 하버드 대학 피커링 교수의 조수 일을 하게 된 겁니다. 이 때 화이트헤드는 글라이더를 제작하고 비행기를 설계하는 등 비행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 한 발 다가서게 됩니다. 그리고 1901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gustave-whitehead.com/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만든 비행기들은 모두 비행에 실패하고, 공장에서 엔진을 제작하며 생계를 꾸려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결국 심장마비로 숨졌고요.

* 역사적 사실을 정하는 방법은 무엇?

이번 일은 ‘역사적 첫 기록’이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줍니다. 이번 일과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전화기를 처음 발명했다며 특허를 신청한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외에 ‘엘리샤 그레이’도 있었지만 ‘벨’이 주인공의 자리를 독점했죠. 그리고 한참 뒤인 2003년에는 ‘벨’과 ‘그레이’보다 오래 전에 독일 과학자가 전화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코네티컷주가 ‘첫 비행은 화이트헤드’라고 인정하자,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스미소니언 측은 “지난 1948년 런던에 있던 라이트형제의 비행기 ‘플라이어1’을 들여오면서, ‘플라이어를 세계 첫 비행기로 발표한다’는 계약을 체결했고, 당시 계약은 아직 유효하다”는 겁니다.

또, ‘ 특정 주의 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꾸는 게 맞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네티컷 주 마음대로, ‘라이트 형제’를 ‘첫 비행의 주인공’에서 끌어내릴 수 있냐는 거죠.
    
‘특허’와 ‘계약’, ‘법’ 으로 만들어지는 ‘기록’이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첫 주인공’들은 과연 진짜 ‘첫 주인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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