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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치유담론 시대의 진짜 어른

[데스크칼럼] 치유담론 시대의 진짜 어른
"사람에게는 모두 한평생 겪어야 할 방황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몽땅 해치워버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생을 걸쳐 조금씩 그것을 쓰는 사람도 있다. 세상 전체를 향해 자신의 방황을 선전하는 사람도 있고, 한평생 홀로 묵묵히 참아내고 이겨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왜 나만, 왜 삶은 내게만’이라는 푸념 따위는 접어두자. 우리 모두는 신이 애초에 안배한 양대로 아주 공평하게 자기 몫의 방황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까"

어느 여류 작가의 말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기에,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후 세상에 이해받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세상을 이해해보려 애쓰고,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놓는 법도 익히려 노력했다. 산다는 일에는 정답도 형식도 없으며 각자의 열정과 갈망에 따라 나아가면 된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의문도 들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어른이 되는 건가...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우연찮게 찾았다. 이주인 시즈카(伊集院 靜)의 '大人流儀 '(사진)란 책을 통해서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진짜 어른이 되는 법' 정도가 될까? 2년 전 일본에서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데, 전혀 몰랐던 책이다. 저자 이주인 시즈카는 재일교포 2세다. 그의 내면은 강건했고, 그 힘은 글귀마다 묻어났다. 식상한 치유담론(治癒談論)이 아니었다. 그런 포스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정말 아팠다. 언제까지나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함께 할 것이라 믿었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한두 번쯤의 아픈 이별. 주변의 애도에도 불구하고 상실의 깊은 슬픔은 오로지 홀로 존재 할 뿐이다. 그는 이런 아픔을 능히 감당하고 극복했다. 20살에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35살에는 결혼 1년도 안돼 아름다운 부인을 황망하게 보냈지만 혹독한 상실의 아픔에서 그는 홀로 섰다.

그래서일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매일 일어나고, 무엇을 의지해서 살아가야 좋을 지 모르는 요즘, 그의 강인함과 통찰력은 단연 돋보인다. 그의 책은 한마디로 진짜 어른 혹은 진정한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도서다. 진짜 어른은 이런 일을 당할때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른으로서 있을 수 없는 태도는 무엇인지, 진짜 어른의 자세는 무엇인지 등등 전부 30개 항목으로 기술했다. 그는 지금 방황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던지며, 체념한 그들을, 헤매며 망설이는 사회 초년병들을 뜨거운 메세지로 고무시킨다. 출판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이유다. 그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아파도 가슴에 새겨야 하는 옳은 말로 독자를 감동시켰다.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위로하지 않고 이겨내라고 호통쳤다.  

우리 사회는 지금 치유(healing)담론이 대세다. 서점가 베스트셀러는 '위로' 권하는 책들이 점령했고, 방송도 앞다퉈 '힐링'을 제목으로 내건다. 불경기와 취업난 등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데 치유담론은 나름 호소력을 갖는다. 하지만 아픔의 근본 원인을 찾지 않고, 개인의 고통을 잊는 방편에 그치기에 문제다. 힘들면 잠시 쉬면 된다. 쉬고 나선 다시 신발끈을 묶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른'은 계속 쉬어도 된다고 부추기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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