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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통상임금 논란 관전법

[데스크칼럼] 통상임금 논란 관전법
자꾸 신경쓰이는데 기우였으면 좋겠다. 통상임금 문제를 둘러싼 재계와 노동계의 충돌 말이다. 지금까진 서로 탐색전만 벌이는 상황이었는데 변수가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방미 기간중 제너럴모터스(GM) 다니엘 애커슨 회장에게 "통상임금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지금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례가 무력화 되는 것 아니냐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여차하면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다. 곳간에서 인심나는 법인데, 기업이 글로벌 경기불황과 엔저(円低)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판이니 해법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입장은 늘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지금 통상임금 문제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있다.

우리 기업의 임금체계와 항목은 복잡한데, 법의 규정은 모호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싸고 수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법원의 판결 역시 일관성과 체계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금과 해고 예고수당 등을 산출하는 기준이 되지만, 근로기준법에는 통상임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에 대한 정의 규정이 없다. 다만 지난 82년에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근로기준법의 위임없이 독자적으로 통상임금을 정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 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6조). 여기에는 기본급 외에 직무수당·직책수당·기술수당·면허수당·위험수당·벽지수당·물가수당 등과 같이 실제 근무일이나 실제 수령한 임금에 구애받지 않고 사업주가 고정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상여금이나 연월차수당·연장근로수당 등과 같이 근로 실적에 따라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달라지는 임금은 포함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하고(56조), 연차 유급휴가 기간에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61조 5항)하고 있다. 반면 퇴직금이나 산업재해보상시에는 그 기준을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으로 하고 있다. 평균임금은 통상임금에 상여금, 연월차수당 등과 같은 비정기적급여를 합한 실질적 임금총액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해 3월 "근속수당과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의 경계가 모호해 졌다. 대법원은 특정 항목의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인지 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정기적으로 지급되는지를 1차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를 계기로 노조의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노조원이 가장 많은 현대· 기아차와 한국GM과 르노삼성,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 100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미 대법원에 계류중인 것만 10여 건에 달한다.
공장

재계는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고정 상여금을 포함할 경우 연간 추가비용은 8조 6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기업이 모든 소송에서 패할 경우 임금 채권 소멸시효에 따라 최소한 3년치의 임금차액을 보전해줘야 하는데, 이 경우 부담해야 할 비용은 최소 38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상장사 순이익의 55%(2011년 기준), 전 산업 임금 총액의 8.9%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4만명 정도의 노조원이 있는 현대차의 경우 회사가 패소하면 2조 5천억 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해 현대차 영업이익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니엘 애커슨 GM회장이 한미경제인모임에 참석한 박 대통령에게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줄 경우, 향후 80억 달러를 한국에 더 투자하겠다고 조건부 약속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한 한국GM은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경우에 대비해 근로자들에게 추가 지급해야 할 인건비 8,140억 원을 적립하느라 지난해 3,4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이렇듯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의 흑자와 적자를 가를 커다란 변수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해법을 찾는 것은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민노총은 사용자들이 그동안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제대로 돌려받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사용자들이 관행적으로 상여금, 식비,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통상임금을 축소시키는 부당노동행위를 벌여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사용자의 잘못보다는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행정지침을 통해 상여금을 경영성과 배분금, 연장 근로수당, 휴일 근로수당등과 함께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분류해 놓았다. 법원은 그동안 통상임금의 범위를 육아수당(1994년), 식대ㆍ교통비ㆍ여름휴가비ㆍ체력단련비ㆍ장기근속수당(1996년), 정기상여금(2012년 3월) 등으로 지속적으로 넓혀왔지만, 고용노동부는 30년 전 지침만 고집해왔던 것이다.

한국GM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통상임금과 관련된 규정은 어떤 식으로든 재정비 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사법부가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 기업의 부담 가중은 피할 수 없게 되고, 기업의 손을 들어주면 노동계가 가만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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