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에서 외국 동전을 환전해주지 않는 문제(이하 ‘환전 거부 문제’)는 단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와 관련된 문제이고 우리가 금융 당국에 대책을 요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기사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은행들이 외국 동전을 거부해온 것은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조금 해봐도 10년, 20년 훨씬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은행 시스템은 첨단을 달리며 진화를 거듭해왔는데 이상하게 외국 동전에 대한 환전 시스템은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바꿔줄수록 손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 창출이 목표인 기업이, 앉아서 손실을 볼 수는 없다!’는 원론에는 공감합니다. 대국민 서비스 기관도 아닌데 말이죠. 반면, ‘외국 지폐로 환전해줄 땐 수수료를 꼬박꼬박 떼면서 그 지폐를 쪼개 나온 동전은 왜 우리 돈으로 다시 안 바꿔주느냐’는 사람들의 반론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들은 우리 돈을 외국 돈으로 환전할 때마다 평균 1.75%의 수수료를 가져갑니다. 10만 원을 환전하면 1,700원의 이익을 보는 셈이지요. 작년 해외에 다녀온 사람들이 1,300만 명을 넘었으니 은행들이 환전 수수료도 낸 영업 이익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수료 주고 바꾼 돈을 외국에서 미처 다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동전 몇 개 들고 왔더니 일반 시중 은행에서는 우리 돈으로 환전을 안 해줍니다. 인천공항 내 환전 전문 은행 몇 군데와 외환은행 정도가 환율의 50% 값으로만 바꿔주는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50%를 쳐주는 것도 달러나 유로, 엔화에 그치고 있지요. 외국 동전이 서랍 속으로 들어가 쓸모없는 쇳덩어리가 되는 이유입니다.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통계로 만든 보도 자료를 보면 2006년도 기준으로 그 ‘쇳덩이들’이 2천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은행들이 왜 환율의 50% 값으로만 환전해주는지 알아볼까요? 역시 은행연합회 관계자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100원어치 외국 동전을 받고 100원을 내줬다고 가정할 때 그 외국 동전을 보관(보관료)했다가 해당 국가로 수출(운송료+보험료 등)할 때까지 70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0원만 내줘야 손해를 20원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죠. ‘바꿔줄수록 손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은행들은 환전 거부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합니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는 걸까요? 은행 잘못이네, 외국 동전을 들고 온 사람 잘못이네 소모적인 공방은 접고 말이죠. 이미 잠자고 있는 상당량의 외국 동전을 깨울 방법이 없다면 더는 잠을 자지 않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은행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해외로 나가기 전 환전할 때 각 은행 창구에서 ‘외국 동전은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우리 돈으로 다시 환전이 안 되니 입국 전 해당 국가에서 지폐로 바꾸시거나 물건 구입 시 최대한 남은 동전을 쓰시라’는 안내만 철저히 한다면 말이죠. 외국 동전은 국내에서 환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이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때 보이스피싱으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넋 놓고 예금을 빼앗길 때 은행들이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 빨리 대책을 내놨더라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줄였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다행히 은행연합회에서 은행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고 하니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