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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방글라데시 건물붕괴 참사의 딜레마

[취재파일] 방글라데시 건물붕괴 참사의 딜레마
현지시간으로 지난 24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인근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의 사망자 수가 3일로 500명을 넘어섰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이 자신들이 만드는 셔츠 한  장 값도 안 되는 월급을 받던 '노예노동자' 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안타까움을 산 사건이었습니다. 때마침 지난 1일 노동절과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와 노동환경 보장에 대해 큰 화두를 던진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 원청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하청업체의 부당노동행위를 감독하지 못한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며 피해보상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원청업체들을 둔 선진국 정부들도 하청업체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참 안타까운 사고였고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할 비극이지만, 어쨌든 이 사고를 계기로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질까요? 안타깝게도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방글라데시에서 제품을 생산해 오던 원청업체들이 속속 하청을 끊고 다른 나라로 탈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사이 방글라데시에서는 의류공장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로 80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언제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방글라데시에서 계속 공장 돌리다가 혹시라도 또 사고가 나면 기업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깎이고 피해보상이다 뭐다 돈은 돈대로 들이기 싫다는 겁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는 국가 경제가 출렁일 위기에 몰렸습니다.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주력산업입니다. 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0%나 됩니다. 종사자 숫자만 300만 명입니다. 헐값에나마 노동력을 사 주던 업체들이 우루루 빠져나가면 이 많은 사람은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반성과 비판, 개선요구가 노동자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삶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라나 플라자 사태는 저개발 국가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가 근절되지 않는 현실적인 한계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원청업체가 됐든 하청업체의 공장주가 됐든 '사용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주고 인간적인 환경에서 노동을 사는 '윤리적 생산'이 이뤄진다면 모든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될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오랜 노동의 역사는 그런 소망이 말 그대로 '소망'일 뿐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윤리적 소비'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쉬운 예는 이른바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거겠죠. 조금 비싸더라도 '원료 생산과 구입에서 제품 생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만들어진 제품'을 사는 겁니다. 나아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것도 역시 '윤리적 소비'의 또 다른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이 구매력을 앞세워서 노동 친화적인 기업은 직접 보상하고 악덕기업은 적극 응징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거나 악덕 기업주들을 규제할 힘이 없는 탓에 가능하면 '윤리적 소비'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싼' 것이 '착한' 것이 되고 '최저가'가 최고의 미덕이 된 시대에 일부러 돈 더 주고 비싼 물건을 사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결심과 의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웬만한 건 다 있는 대형마트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우유 사러 동네슈퍼로, 전구 사러 전파사로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이나 가격차이보다 더 큰 장벽은 수시로 찾아드는 회의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방패를 앞세운 힘 가진 이들의 거대한 탐욕 앞에서 힘없는 소비자들의 보상이나 응징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 "과연 윤리적 소비가 윤리적 생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사고 발생 열흘이 다 돼 가는데도 여전히 매일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를 보면서 노동으로 상징되는 개인의 가치와, 그 개인의 한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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