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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산불은 정말 무섭더라

차마 방송에 내지 못한 영상과 이야기

[취재파일] 산불은 정말 무섭더라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피해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낼 겁니다. 지난 9일 밤 대형 산불이 났던 울산 울주군 언양읍 얘기입니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께 한바탕 혼부터 났습니다. 왜 이제 왔냐고, 집도 가축도 이미 다 타버렸는데 이제 오면 무슨 소용이냐고. 이럴 때면 저희는 솔직히 드릴 말씀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입니다. 서울에서 오느라 늦었다 어쨌다 이런 변명은 소용이 없을뿐더러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일이 이미 벌어진 후에야 현장에 가게 되는 사회부 기자의 숙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한참 혼이 난 뒤,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참혹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참혹하게 타 죽어가야 했던 건 수 백 마리의 개와 닭들이었습니다. 숯 검둥이로 변했지만 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사체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고약한 냄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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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육장 중간쯤 다다랐을 때는 코끝 대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뜨거운 불길이 싫었던지 어미 품속으로 자꾸만 파고들던 열 마리의 새끼들은 어미 젖 주변에 모여 있었습니다. 어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요. 자기도 힘들 텐데 낑낑대는 새끼들을 어찌하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제가 최근 자식을 얻어서 그런지 갑자기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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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어미와 새끼들만 모아 놓은 사육장이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농장 주인은 할 말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새끼 한 마리라도 아플라치면 따로 데려다가 밤새 간호를 해줬었는데, 하룻밤 사이 이 모든 가축들을 잃었으니 그 심정은 가히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갑자기 덮쳐 오는 산불에 본인과 집사람만 몸을 간신히 피했노라고 얘기하는 주인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새끼들을 살리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급한 와중에 가축이지만 살 녀석들은 살라면서 사육장 문을 열어준 농민도 있었습니다. 토종닭 2천여 마리를 키우던 염경석 농민이었는데요, 이튿날 다시 농장에 가보니 닭들은 절반 가까이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타죽기도 하고 불길을 피해 도망을 가기도 한 겁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닭들도 온전치 못했습니다. 몸과 발에 화상을 입어 깃털이 얼마 남지 않거나 잘 걷지도 못하는 닭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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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얘기만 실컷 늘어놓았는데요, 너무나 끔찍한 장면과 이야기를 방송에 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늦게나마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전합니다. 어쨌건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지요. 염경석 씨 부부도 닭들이야 다시 키우면 되지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집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당장 다리 뻗고 누울 곳이 없어 근처 친척집을 전전하는 게 힘들었던 겁니다. 마침 읍사무소에서 임대 아파트라도 잠시 들어가 사시겠냐고 물으러 왔더랍니다. 하지만 가축들 밥도 줘야 하고 여의치 않다고 하자, 임시 컨테이너 숙소 얘기를 했다는데 부부는 그나마도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불 속에 건진 살림살이라곤 밥솥과 냄비 2개가 전부였는데 말이죠.

해마다 봄철이면 반복되는 산불, 어떤 경우는 자연발생적인, 그래서 불가항력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포항 산불처럼 철없는 10대의 불장난이거나, 부주의한 담뱃불 등이 원인인 경우에는 그에 비해 엄청난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참혹합니다. 봄철 몇 달 만이라도, 아니 사시사철 산 근처에서는 아예 불을 멀리하는 것이 수많은 생명을 보호하는 길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피해 주민들의 심정을 잠시라도 헤아려보시면 실천이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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