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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 별장' 있는 저도에 무슨 일이?

70년 간 출입 통제…허울만 군사 지역

[취재파일] '대통령 별장' 있는 저도에 무슨 일이?
1993년에 상영된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섬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온갖 슬픔과 사연을 다룬 영화죠. ‘그 섬’이 어떤 특정한 섬을 지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남 거제시에 있는 ‘저도’에서 저는 비슷한 슬픔과 사연을 봤습니다.

해송과 동백나무가 수려한 저도는 그 빼어난 경치로 일찌감치 역대 대통령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축구장 60배 정도 크기로 비교적 면적이 작은 섬인데요, 1954년 해군이 저도를 인수한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휴양지로 사용되다가 1972년 청해대라는 이름의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됐습니다. 거제도에서 1km 떨어져 배로 2~3분이면 갈 수 있는 섬인데 일반인은 이곳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 그런지 배를 빌려 타고 한번 가봤습니다. 선착장에 배를 대려고 하자 해군들이 깜짝 놀라며 달려 나오더군요. 신분을 밝히고 선착장에라도 잠깐 올라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만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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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물었더니 “군사작전구역이라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해해군사령부에서 제주도 쪽으로 군함이 진출입하는 데 전진 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섬 안에 초소 등 군사시설물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도 군 장교 출신인지라 ‘군사작전구역’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군 측의 설명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의 말은 다르더라고요. 2010년 말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가 개통됐는데 이 다리가 저도 위를 지나는 바람에 섬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보안에 취약해졌는데 그렇다면 작전구역의 의미가 퇴색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주민들은 해군이 저도를 통제하는 진짜 이유를 바다의 청와대로 불리는 청해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작전구역이라서 통제하는 게 아니고 청해대가 있어서 출입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군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이유를 들어보면 개연성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군사 정권 시절에는 저도 인근에서 일체의 어로 행위가 금지됐다고 합니다. 특히 대통령이 저도에 휴가를 오기라도 하면 인근 주민들은 아예 집밖으로 나오기조차 힘들었다고 하네요. 바다는 해군이 통제하고 뭍은 육군과 청와대 경호처에서 통제하고 산은 특전사가 이중 삼중으로 진을 치고 있어 주민들은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마을에 두 명이나 살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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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방법과 수위는 그때보다 훨씬 낮아졌지만 최근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저도를 더 많이 찾았다는데요, 평상시에는 저도 주변에서 어로 행위가 가능하지만 대통령이 한번 휴양 차 올 때면 한 일주일 동안은 바다에 고깃배를 못 띄운다며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합니다. 물론 국민이 뽑은 대통령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한 경호와 보안이 뒤따라야 하겠지요. 그러나 청해대는 1993년 대통령 별장 지위에서 공식 해제됐습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대통령 별장이기 때문에 출입을 통제할 근거가 사라진 셈이지요. 군사지역이라서 출입을 통제한 것인지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데 그게 대통령이 쉬어갈 별장을 관리할 목적으로 통제를 해왔다면 더더욱 문제라는 주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둔 중인 해군과 대통령 말고는 저도의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없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어떨까요? 거제시청에서 받은 저도 관리 현황을 살펴보니 ‘해양휴양시설’로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넌지시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대통령이 간 뒤에도 거기에 여자와 남자들이 며칠 동안 수영하고 골프를 칩니다. 그게 누구겠어요? 우리 같은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데…”라며 끝을 잇지 못했던 말입니다. 해군 측에 확인을 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맞긴 맞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해군 장병(일반 사병만을 뜻하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과 그 가족들이 쉬고 갈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군사지역이라면서 해군의 휴양지로도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지역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설명은 저도를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군사지역이라는 통보만 하면 그런가보다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암울했던 시대를 우린 지나왔잖습니까. 우리 모두의 자연인데 누구에겐 휴양지이고 누구에겐 금단의 지역이라면 이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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