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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퀘스터'에도 펄펄 나는 뉴욕증시, 이유는?

[취재파일] '시퀘스터'에도 펄펄 나는 뉴욕증시, 이유는?
미국 뉴욕 증시가 6일과 7일 8일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우리시간으로 8일 새벽,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0.23% 오른 1,4329.49에 마감됐습니다. 다우 뿐 아니라 나스닥과 S&P 500 등 3대 지수 모두 이번 주에만 1% 이상 올랐습니다. 그 소식을 보면서 국제부 기자들은 참 난감하고 머쓱합니다. 불과 며칠 전인 2일, 미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삭감 이른바 '시퀘스터' 발동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회복에 엄청난 걸림돌이 생겼다고 기사들을 쏟아낸 직후인 탓입니다.

시퀘스터 발동을 걱정한 근거는 대충 이렇습니다. 시퀘스터로 미국 연방정부 예산이 9월까지 92조원이나 자동삭감되게 됐는데 가뜩이나 경기가 나쁜데 정부 지출이 줄면 시장에 돈이 더 마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공무원들은 돌아가면서 무급 휴직을 해야할 처집니다. 또 국방 예산이 50조원이나 줄기 때문에 군수산업을 비롯한 관련 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보겠죠.

이런 직접피해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여기서 파생되는 2차, 3차 피햅니다. 수입이 줄어든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고 이는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면 그 파장은 제조업으로 유통부문으로, 서비스 부문으로 차례로 번질 것이고 결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겠죠. G2의 한 축인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 결국 세계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아주 상식적인 예상이고 분석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과 달리, 실제 미국 증시는 정치권의 시퀘스터 최종 담판이 무산된 당일에 오히려 올랐습니다. 그러더니 이후에도 파죽지세로 치솟아서 연일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보통은 이런 '분석'들을 합니다. "시퀘스터는 돌발변수가 아닌 '예고된 악재'였기 때문에 그로 인한 우려는 이미 시장에 다 반영돼 있었던 탓이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지켜봐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분명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을 거라는 얘깁니다.

저도 이 분석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시퀘스터에도 불구하고 연일 폭등하는 미국 증시를 충분히 설명하는데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설명에는 증시와 경제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전제 하나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가는 가장 대표적인 경제지표 가운데 하나지만, '주가=경제상황'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 미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라는 사실이 오늘이 미국 역사상 경제 상황이 가장 좋은 날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면, 실제 경제상황과 주가 사이의 불일치는 대체 왜 오는 걸까요? 해답을 찾기 위해 좀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지난 2008년 국제유가가 폭등했습니다.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게 뛰었습니다. 80년 오일쇼크 이후 28년만의 '사상 최고치' 신기록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세계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우리나라도 유가보조금 제도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저소득층의 교통비 등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해 주기까지 했을 정돕니다.

그러고 얼마 후인 지난 2009년 초의 일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60 MINUTES'에서
국제유가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방송에서 소개된 한 석유업계 전문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가 어딘지 아세요? 이 질문을 하면 다들 엑슨모빌이나 셰브런이나 BP라고 대답하죠. 하지만 제가 볼 땐 모건 스탠리입니다."

모건 스탠리는 잘 아시다시피 투자은행입니다. 그런데 석유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회사가 관련 기업들을 동원해서 막대한 양의 원유를 실제로 사고 파는데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모건 스탠리는 이를 위해 무려 2천만배럴 규모의 원유 저장 탱크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공급되는 가정용 석유의 15%가 뉴해븐에 있는 모건 스탠리 원유 탱크를 거쳐서 나갑니다. 엄청난 규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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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스탠리 뿐 아닙니다. 또 다른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도 정유업체들 주식을 사들여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원유 시장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골드만 삭스가 통제하는 송유관 길이가 미국내에서만 43,000마일에 이르는데, 그 구간에 있는 원유 저장 탱크만 150개에 달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지 몇 달 후인 2009년 6월엔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은행인 JP 모건이 저장량 273,000톤 규모의 원유 수송선을 임대했다는 기사가 블룸버그에 대대적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273,000톤은 일반적인 대형 원유 수송선보다도 3배나 큰 수송선으로 '슈퍼탱크'로 불립니다.

투자은행이라고 해서 석유를 사고팔지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사고 파는 방식입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쌀 때 잔뜩 사들여서 움켜쥐고 있다가 비쌀 때 풀어서 과도한 초과이익을 남기는 방식인데, 거래라기 보다는 사실 공급을 통제해서 가격을 조작하는 거죠. 속칭 '물량장사'라고 하는 이런 사고팔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비윤리적이지만 투자은행들의 원유 물량장사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투자은행은 이른바 '커머더티 선물'이라는 투기성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회사들입니다. 선물 거래는 커머더티 즉 실제 상품을 사고 파는 게 아니라 '미래의 특정 시점에 특정 상품을 특정한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사고 파는 거랩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원유를 쟁여놓고 공급량을 조절하면 가격 자체는 물론, 가격의 변동 시점까지 조작할 수 있게 됩니다. 특정 시점에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직접 조절할 수 있으니 선물 시장에선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는 셈이 되는 거죠.

이 때문에 투자은행들은 선물 거래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 더더욱 물량장사를 통한 공급량 조작에 열을 올리게 되고 그 결과 유가는 실제 수요 공급 곡선과 무관하게 이런 '투기 수요'에 의해서 오르고 내리는 겁니다. 실제로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08년의 경우 한동안 원유 수요가 줄었는데도 가격은 오르는 현상까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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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증시와 경제의 관계로 돌아가서, 원유 가격 변동 뒤에 숨어있는 투자은행들의 이런 행태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야기합니다. 이익의 극대화라는 투자의 기본 원칙과 윤리성, 도덕성이라는 가치 사이의 충돌 말입니다. 투자은행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활동은 막대한 자금력이라는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익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현명한 투자'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하는 원유 소비자들 입장에선 비난받아 마땅한 매우 '비윤리적인 투자' 행위입니다.

문제는 '투자 권하는 사회' 속에서 대부분 상품의 가격이,  현명한 것이든 비윤리적인 것이든, 이런 '투자' 행위에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 영향이 극대화 되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고요. 그러다보니 주식시장이라는 곳은 수요/공급과 가격이 실제 기업 가치나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투자라는 가면을 쓴 욕망에 의해,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그 욕망이 또 더 큰 욕망을 낳는, 욕망의 자기발전에 의해 결정되고 굴러가는 '그들만의 세계'가 되고 마는 거죠.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코스피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날은 2011년 5월 2일입니다. 종가 기준으로 2,228.96이었습니다. 2011년은 어떤 해였나요?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져서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린 햅니다. 대기업과 재벌의 횡포가 얼마나 심해졌으면 정부가 나서서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기구까지 만들었던 햅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죠.
양극화가 심해지고 서민 경제가 파탄나면서 연말엔 가계부채가 900조원를 돌파했습니다. 방송 신문 모두 연일 '시한폭탄'인 가계빚이 언제 뻥 터질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해였습니다. 그 속에서 주식시장만 혼자 펄펄 날았습니다.

사흘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미국 증권시장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지는 두고 볼 일입니만, 언젠간 끝이 오겠죠. 하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럽이든, 주식시장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등락을 만드는 인간의 탐욕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갈수록 더 심해질 지도 모르죠. 그래서, 시퀘스터에도 불구하고 연일 폭등하는 미국 증시를 보면서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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