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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0.0046%를 위한 스마트폰

[취재파일] 0.0046%를 위한 스마트폰
휴대전화 업체 Vertu사가 드디어 그 말 많았던 스마트폰 단말기 "Ti"를 공개했습니다. Vertu는 뭐고 Ti는 뭐냐고요? 무슨 전화긴데 왜 말이 많았냐고요? 우선 사양부터 보시죠 .

OS는 아이스크림샌드위치 4.0, 1.7GHz 듀얼코어 프로세서, 1GB램, 64GB 플래시 메모리, 화면 크기 3.7인치, 무게 180g, 800만 화소 후면카메라, 120만 화소 전면카메라.

어떠신가요? 이런 전문용어는 봐도 뭐가 뭔지 모르시겠다고요? 맞습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이 그러실 겁니다. 그럼 이렇게 얘기해 보죠.

우선 OS는 젤리빈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샌드위칩니다. 지난해 3월에 공개된 것이죠. 한마디로 '구닥다리'입니다. 듀얼코어 프로세서 역시 갤럭시S3보다 한참 구모델이죠. 3.7인치 스크린이요? 갤럭시S3는 물론 아이폰5보다 작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무게는 반댑니다. 118g인 갤럭시 S3나 112g인 아이폰과 비교하면 거의 도시락 수준입니다. 메모리, 카메라 등등 기타 사양도 뭐 딱히 특별할 게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요즘 세상에, 4G가 아닌 3G입니다! 한마디로, 한물 간 기술들로 구성된 평범한 사양의 보급형 스마트폰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화제냐고요? 이 전화기의 특별함은 바로 가격에 있습니다. 해외 언론사마다 보도 내용이 조금씩 틀린데, 직접 CEO를 스튜디오로 불러서 인터뷰한 CNN 보도를 기준으로 하면 가장 기본적인 '보급형' 모델이 한대에 $10,616입니다. 우리돈 천만원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보급형' 모델 얘깁니다. 이번에 함께 출시된 제품들 가운데 최고급 모델은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비쌉니다. $18,000!!!!

사실, 저를 포함해서 이 글을 읽으시는 '평민'들은 대부분 별 관심이 없으셔서 눈치채지 못하셨겠지만, Vertu라는 회사가 '럭셔리 휴대폰'을 처음 내놓은 건 이미 11년 전입니다. 플래티늄 케이스에 18k 골드와 화이트골드로 장식한 전화기였죠. 당시 가격은 영국에서 판매가가 15,000파운드였습니다. 거의 3천만원 쯤 되네요.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많이 내린 셈입니다.

이렇게 비싼 전화기를 누가 살까 싶지만, 이 회사는 전세계 66개국에 500개 정도 매장을 열어놓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모두 326,000대가 팔렸습니다. 특히, 리먼 사태가 터졌던 2008년을 제외하곤 10년 내내 판매량이 해마다 늘었다는 놀라운 사실! 고객은 주로 중동과 유럽, 중국의 '부자'들입니다. 단일 국가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군요.

그렇다면 뭔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좀 더 파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하드웨어부터 보겠습니다. 제조사는 Vertu의 최신모델 Ti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절대 흠집이 나지 않는 전화기"라는 점을 꼽습니다. 케이스는 티타늄으로 만들었고 액정은 사파이어 크리스탈이라고 하는군요. 다이아몬드로 긁지 않는 이상 흠집이 안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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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혹은 서비스 적인 측면을 볼까요? 이 전화기의 가장 큰 자랑은 이른바 '컨시어지' 서비습니다. 단말기를 구입하면 개인 비서가 배정됩니다. 고객이 전화기에서 버튼을 누르면 비서가 연결되는데, 이 비서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주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해 줍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 여행가서 저녁에 뭐할까 싶으면, 버튼을 누른 뒤 "오늘 저녁 뮤지컬 맘마미아 로얄석으로 석 장 예약하고 스타 셰프 제이미가 하는 식당에 예약해 주세요" 하면 되는 겁니다.

또, 이 전화기 옆면엔 'Vertu 키'라는 게 있는데, 이 키를 누르면 바로 서비스 센터에 연결됩니다. 전화기에 문제가 생기면 역시 전세계 어디에서든 1년 365일 24시간 무휴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업체측은 전화기를 구입한 고객에게는 "단말기는 물론, 그 속에 담긴 데이터나 심지어 고객까지도 완벽히 보호해 준다"고 합니다. "고객까지도 완벽히 보호해 준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인지 정말 궁금하지만, 그 전화기를 '아직 안 산' 탓에 저로서는 알 길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조목조목 살펴보니 역시 좀 특별한 전화기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특별한 건 분명한데, 그 특별함이 과연 천만원 가치가 있는것인지 말이죠. 정말 궁금했는데, 역시 사람 마음은 똑같은가 봅니다. CNN 앵커가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한 CEO에게 바로 그 질문을 아주 대놓고 하더군요.

"전세계에서 32만6천대가 팔렸다면 절대 많은 수가 아닌데, 이 전화기를 사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요?"

돌직구 질문에 대한 Vertu사 CEO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좀 다르고(different), 독특한(unique) 걸 찾는 사람들이죠. 흔해 빠진 거 말고요(not widespread). 권위있는 것(authe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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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답을 듣는 순간, 혼자 민망하고 머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역시.... 그런 거였습니다. '그깟 전화기' 한대에 천만원을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기능'이나 '재료' 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기준들은 이미 별 관심사가 아닐 겁니다. 컨시어지 기능이 없으면 비서 데리고 여행가면 그만이죠. 전화기가 고장나면 서비스 신청할 필요 없이 새로 하나 사면 되는 거고요. 떨어뜨려서 흠집이 생기면 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는 전화기를 사는 게 아니라, "나는 천만원짜리 전화기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지갑을 여는 것일테니까요. 그런 그가 사양이니 기능이니 재료니 열거하면서 "이게 정말 천만원 가치가 있는 물건일까?" 열심히 따지고 있는 절 봤다면, "쟨 대체 뭐 하는 앤가?" 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몇년 새 '고장난 자본주의'와 전세계적인 양극화가 화두가 되면서 '1% vs. 99%'라는 표현이 거의 고유명사 처럼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따져봤습니다. 2013년 현재 세계 인구는 71억명 정돕니다. 그 가운데 32만6천명이라.... 계산해 보니 0.0046%군요. 1%의 0.46%인 0.0046%!

0.0046%를 위한 전화기. 여러분은 갖고 싶으신가요? 0.0046%를 위한 전화기라면.... 전, 뭐,, 살 수 없어도 별로 안 억울합니다. 그 전화기를 갖고 계신 분들은 '신포도기제'라고 말하실 수도 있지만, 전 정말, 진심(!)입니다. 전 어디까지나 1%와 99% 사이에 존재하는 벽도 하루 빨리 허물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0.0046%라니. 그래서 전 개인적으로 "돈은 있지만 안 사렵니다." 정말이지,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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