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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쉬태그'라는 말을 쓰지 않을 권리, 또는 자유

[취재파일] '해쉬태그'라는 말을 쓰지 않을 권리, 또는 자유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나라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에 여행가서 영어로 얘기를 하면 현지인들이 영어를 알아도 일부러 답을 안해줘서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에 프랑스인이 별로 없어서 그런 얘기들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언어에 관한 한 프랑스 사람들이 좀 유난스러운 건 사실인 듯 합니다. 실제로 프랑스에는 언어를 담당하는 공식 정부 기관도 있을 정도니까요. 단순한 학술기관이 아니라 실제로 언어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는 것까지 관장하는 행정부첩니다.

이 기관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외래어의 남용을 막고 '바른 우리말'을 지키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외래어'의 타겟은 주로 영어지요.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공직자와 교사들은 '햄버거'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위크엔드'라는 단어도 사용하면 안됩니다. 직장에서 입에 올려도 안되고 공식 문서에 글로 쓰는 건 더더욱 안됩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따른 '금지'사항입니다. 대신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단어를 사용하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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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관이 최근 금지어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바로, '해쉬태그'입니다. 트위터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는 단어일텐데, 핵심어, 주제, 대충 이런 뜻입니다. '#' 기호 뒤에 자신이 올린 내용의 핵심어를 적어서 다른 이들이 검색하기 쉽게 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SBS8뉴스" 이런 식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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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당국은 최근 영어인 'hashtag'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프랑스식 표현인 'mot-dieses'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전 북한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남북농구나 남북축구 같은 걸 계기로 북한의 스포츠용어들이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었죠. 영어 단어들을 우리말로 바꾼 표현들 말입니다. 예를 들면, 축구의 페널티킥은 '벌차기', 농구의 덩크슛은 '꽂아넣기'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사를 보면서 미국 사람들 반응은 좀 다르더군요. 미국 CNN이 프랑스의 '해쉬태그 사용 금지' 정책을 보도했는데 요지는 이렇습니다. "지난 300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공용어로 군림하던 불어가 요즘은 영어에 밀린 것 때문에 니들이 얼마나 약이 오른지는 알겠다만, 좀 속보이고 좀스럽지 않냐? 우린 나중에 영어가 중국어에 밀리는 상황이 와도 니들처럼 그렇게 옹졸하게 굴지는 않을 거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글쎄요.... 우리나라도 우리말 가운데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를 추방하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죠. 일본어가 아니더라도, 영어든 불어든 적합한 우리말 단어가 있는데 무분별하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은 되도록 '바른 우리말' '고운 우리말'을 대신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이고 교육적인 차원에선 더 그렇죠. 제가 기사 쓰면서 양동이를 '바께스'라고 했다간 아마 엄청난 비판과 항의전화, 악플에 시달려야 할 겁니다. 그런 걸 보면 자기나라 말을 지키려는 노력은 국제사회의 위상이나 파워게임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가 아닐까요?

요즘처럼 시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회 변화 속도는 이전에 감히 꿈도 못 꿨던 수준으로 빨라진 모바일 시대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조어들을 남의 나라 말이라고 다 금지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외래어 남용을 막고 고유한 자기 나라말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건 의미있고 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니들보다 잘나가니까 배아파서 몽니 부리는 거지?"식으로 비딱하게 본다는 것이야 말로 미국의 자격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 200년 밖에 안되는 미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호령하면서도 문화와 전통 얘기만 나오면 늘 유럽 앞에서 움츠러 들어 온 것도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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