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위생 '0'점 도축장

어릴 때부터 고기를 유달리 좋아했습니다. 산적 고기 한 점을 먹기 위해 눈이 빨개지도록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고기 먹기가 좀 그렇습니다. 아는 게 병이라고, 안 봤으면 괜찮을 것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전부 다 지켜봤습니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고기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곳이라 제 마음부터가 불편했고, 소.돼지의 비명소리와 함께 도축장 특유의 냄새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거칠것만 같은 도축장 사람들 틈에 섞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도축장 안에 들어가보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기사거리였습니다.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현장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차량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고기 덩어리들. 짐짝도 그렇게 험하게 다루지는 않을 듯 했고, 떨어져나간 고기 찌꺼기들로 차량 바닥 자체도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핏물이 고여있는 작업장을 밟고 다닌 신발을 신은 채로 고기가 실린 차량에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렸습니다.

중장비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선 지게차가 도축된 소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언제 세차를 했는지 짐작조차 안되는 모습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잠시 뒤, 고기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고, 잠깐이나마 무언가 뒷처리를 기대했던 제 마음과 달리 그 덩어리는 흙먼지가 묻은 그대로 운송 차량에 실렸습니다.

고기는 원래 도축되는 순간부터 정육점에 도착할 때까지 고리를 이용해 공중에 매단 채 운송해야 합니다. 오염을 막기 위해 벽이나 바닥에 닿지 않도록 정해 놓은 겁니다. 하지만 운송 차량들 대부분에서는 고리를 비롯해 도구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으례 그냥 고기를 바닥부터 쌓아서 옮기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기를 2-3배 더 실을 수 있고, 차에 옮겨싣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고기 상태는 좋을 리가 없습니다. 제일 밑에 깔린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고기 덩어리들이 서로 닿고 부대끼면서 상하기 쉽고 냉장, 냉동 효과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정육 도매업자는 이런 식으로 고기를 운송할 경우 여름이면 쉰 내가 날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어차피 더러운 차량 바닥에 실을 물건이라지만, 아예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도축장 주차장 한 켠에 굴러다니던 돼지족들. 족발을 너무 좋아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가슴 아픈 광경이었습니다.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날 테니 말이죠.

1차적인 원인은 물론 도축장 관리자와 작업자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보다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정부당국이 더 원망스럽습니다. 2달전, 정확히는 40일전 농림수산식품부는 전국의 도축장 위생관리수준이 좋아졌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꾸준히 깨끗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취재했던 도축장에 <상.중.하> 세개의 등급 가운데 '상'등급을 부여했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신뢰해야 할까요? 만약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중'.'하' 등급에 속한 나머지 65%의 도축장은 제가 갔던 곳보다 더 비위생적이라는 얘기인데, 도저히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수시로 직접 방문 점검을 실시하는 관할 지자체도 직무를 유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확인 결과, 2주 전에도 점검을 실시했고, 단 한 건의 지적사항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2주 만에 그렇게 깨끗했던 작업환경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수시로 이뤄지는 '위생점검'이 하나마나라고 귀띔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몇 시에 점검이 나온다는 것까지 알고 그날은 싹 치워놓고 준비를 한다는 겁니다.

업체 측은 설 대목을 앞두고 평소보다 물량이 2-3배 가량 늘어나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평소에는 깔끔하게 잘 했다고 말했습니다. 택배 대란에서 볼 수 있듯, 도축장도 평소보다 배가 넘는 물량을 처리하려면 힘들었겠다는 점은 분명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는 거니까, 물로 씻지도 않고 바로 국민들의 입에 들어가는 고기니까 그래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도축장 측은 즉각 시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 곧바로 전국의 도축장에 대한 일제 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예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보다는 괜찮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겠노라고 공표하고 점검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경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이 절실해 보입니다. 일 터진 뒤에 급하게 진화하려는 '쇼잉'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미력하나마 더 관심을 갖고 감시의 눈길로 바라보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