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외교-통상 분리' 망한다 vs 흥한다…누구 말이 맞나?

[취재파일] '외교-통상 분리' 망한다 vs 흥한다…누구 말이 맞나?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린 부분에서 부처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 사이에 가장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당초 외교통상부에서 통상기능을 분리하는 내용은 장차관들조차 몰랐을 정도로 사전에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거나 알려진 바가 없어 외교부 조직은 그야말로 '멘붕'상태에 빠졌다. 통상정책은 가져가더라도 교섭이라는 외교부 고유의 업무는 지켜야 한다며 인수위에 조직의 입장을 전달했지만, 결국 통상교섭 전부가 지식경제부로 이관되는 세부 조직개편안이 발표됐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될 예정인 가운데, 이제 믿을 곳은 국회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외교통상부는 대 국회 설득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15년 전 떼어냈던 통상을 다시 가져오게 된 지식경제부도 뒷짐만 지고 있는 게  아니다. 양 조직의 치열한 대 국회 논리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외교부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중위권 선진국들은 현재 우리와 같은 '외교형 통상조직'을 선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스웨덴, 핀란드 등이 그 예다. 특히 외교부는 캐나다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는데, 이유는 2003년 외교부와 통상부를 분리했다가 국익 저해를 이유로 2006년 재통합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개도국에서는 산업통상형 통상조직으로 꾸려가다가 선진국으로 향해갈수록 외교통상형 또는 미국처럼 독립기관형 통상조직으로 움직이는데, 이번 조직 개편은 그런 추세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게 외교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4대 불가론'으로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정리했다.

간단히 논거를 짚어보면 지경부는 특정산업, 즉 제조업 전담부처이기 때문에 통상교섭 총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한 이유고, 위에서 밝힌 전 세계 통상조직 진화 추세에 역행한다는 것, 또 정무 외교와 경제통상 외교 간에 교류하며 얻어지는 시너지효과가 단절된다는 것, 그리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부분으로 새 정부 출범 이후에 당장 부각될 주요 현안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명박 정부 초기를 온통 뒤흔들어놨던 '쇠고기 촛불시위'처럼 통상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결과는 새 정부에 고스란히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쌀 관세화 협상, 쇠고기 협상, 한미FTA 투자자국가분쟁(ISD) 개정 문제는 모두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되는데 이런 주제들이 모두 지식경제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미지
지식경제부의 입장은 예상하겠지만 180도 다르다.

지경부는 무역규모 1조 달러 이상의 선진 경제 강국은 대부분 산업통상형으로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결국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도 무역 규모 2조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통상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환영했다.

그러면서 외교통상부가 15년 동안 통상업무를 맡으면서 FTA 체결 건수를 늘리는 성과도 있었지만 타결이라는 실적에 치우치다보니 국내 산업 후속대책이나 연관 정책 수립에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또 정무적 판단이 교섭 체결에 우선하다보니 정치적인 이해 관계 때문에 협상에 영향을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결국 국익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경부는 외교부의 산업에 대한 비전문성 때문에 업계가 불편해하고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가 이 일을 맡게 되면 기회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양측의 주장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정도로 요약을 하고, 그럼 어떤 방향이 맞는 것인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 정권에서 꾸려갈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한 상황에서 국회 통과 과정이 남아있긴 해도 완전히 다시 없던 일로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편을 하되 과연 통상 업무를 어떻게 분담해야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단절되지 않도록 할 수 있냐는 데에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통상조직 분리 문제가 나왔을 때부터 강하게 반발해왔다. 스스로 한미 한EU 등 주요 FTA를 진두지휘해온 입장에서 그 성과를 부정하는 듯한 조직개편이 반가울리 없다. 김 의원은 "오늘날 통상문제는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부처가 맡아서 관리하기 어렵다"며 "만일 통상기능을 분리한다면 국무총리실 산하에 통상교섭처를 독립해서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USTR처럼 독립 모델이 그나마 산업쪽 부처로의 이관보다 부작용을 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취재하면서 여러 통상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

김종훈 의원처럼 지금가지 15년간 이어온 것을 굳이 깰 만큼 외교와 통상이 같이 있어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강하게 우려를 표하는 의견과, 통상조직을 어디에 둘지는 국가별 특성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정답은 없고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미, 한EU FTA 발효 이후에도 수출증가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부 품목은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초기 현상-물론 전 세계 경기불황의 원인도 있다-을 거론하면서 이런 이유는 업계에서 FTA에 대한 활용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거의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었다. 즉 '밀고 당기는 교섭과 협상- 타결- 박수 세리모니'가 FTA의 전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이후 '취약산업 보호대책 + 이득산업 활용 극대화 방법'을 다 아울러야 FTA의 본 취지에 맞는 그림이 완성된다는 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 FTA 협상 개시에 앞서 공청회를 열었지만 법적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외교부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경부가 15년간의 숙원을 이뤄냈다며, 조직이 커지게 됐다며 반기기만 할 때가 아니다. 의견이 다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걱정스런 점으로 꼽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우선 현재 통상교섭본부장이 장관급으로 직접 협상에 나서는데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장관이 협상만 챙길 순 없을 텐데 어찌할지, 만일 차관급이 한다면 격이 맞지 않아 상대국과의 원활한 협상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대표성의 문제다.

그리고 전문성, 인력의 문제도 그 중 하나다. 복잡다단한 국제규범에 대한 지식과 협상 스킬, 교섭능력이 하루아침에 습득되는 것이 아닌데 만일 교섭본부 인력이 충분히 옮기지 않는다면 상당기간 애로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의 통상이슈는 제조업 베이스만이 아니라 서비스, 투자 등 보다 폭넓게 이뤄지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전문성을 축적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번 개편이 공론의 장이 없이 급작스럽게 이뤄져 초기 조직 융합단계에서 미묘한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아마 향후 국회논의 과정에서 치열한 논리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먹고사는 일상에 바쁜 일반 국민들에게는 어떤 부처가 뭘 맡는지 관심밖일수도 있다. 때문에 이런 논리 싸움이 조직 권한을 뺏고 뺏기기 않으려는 ‘밥그릇싸움’ 즉 '조직이기주의'로 비쳐지곤 한다.

15년간 꾸려온 조직형태를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엇박자가 나올 공산이 크다. 두 부처가 싸움만 반복하게 놔둘 것이 아니라 새 정부 인수위는 이제라도 구상 단계에서 생략했던 공론화의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기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머리 맞댄 고민과 세부 조직 운영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부작용이 나올 때마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푸념만 반복될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박 당선인이 결코 바라지 않는 조직개편 취지의 ‘약속과 원칙’이 깨지는 일이 될 수 있어 미리 조율이 필요하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