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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0.0000097%의 가벼움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재벌2세들에 대한 처분은 정당한가?

[취재파일] 0.0000097%의 가벼움
0.0000097%의 가벼움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유통 재벌 2세들을 검찰이 약식기소했다. 쉽게 말해 벌금 처분이다. 금액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제일 센 처분을 받은 기업인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검찰은 벌금
7백만원을 매겼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백만원. 정유경 (주)신세계 부사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똑같이 4백만원 처분을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돈 많기로 손꼽히는 재벌 2세들에게 돈으로 벌을 주다니... 7백만원이 나 같은 필부에게는 아픈 형벌일지 모르겠지만, 정용진 부회장 등 재벌 2세들에게 형벌로 느껴지기나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벌금을 내기 위해 이들이 얼마만큰 희생을 해야 하나 계산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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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된 재벌2세 가운데 가장 가혹한 벌금 처분을 받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우를 분석해봤다. 경영분석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 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용진 부회장이 소유한 자산 총액은 약 7209억원이라고 한다. 이번에 검찰이 처분한 7백만원을 7209억원으로 나눠보니 대략 0.0000097%가 나왔다.(마지막 자리는 반올림했다.) 정 부회장이 가진 재산 가운데 0.0000097%만 희생하면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대가를 지불 완료할 수 있는 셈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벌금을 완납하기 위해 사실 자산 원금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정 부회장 연봉에 대해선 정확한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CEO 스코어가 분석한 자산총액만 가지고도 금융 소득을 유추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의 자산총액(CEO스코어 분석 결과)에 한국은행이 고시하고 있는  금리 2.75%만 적용해도 매일 5431만 4383원을 벌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볼 때, 1시간에 226만 3099원씩 벌 수 있다. 정 부회장은 4시간 분량의 금융 소득만 가지고도 넉넉히 벌금을 완납할 수 있는 셈이다.(물론 이자가 시간 단위로 계산되지는 않지만, 전체 가능 금융소득을 시간 단위로 나눠보면 이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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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처분이 잘못됐다거나, 형평을 잃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물론 국회 불출석에 대한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이론적으로는 정식 재판에 회부해 징역 3년까지도 구형할 수 있다. 그러나 극히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 불출석에 대해 징역형을 구형한 사례가 없다.(과거 모 기업 사장이 아무런 사유 없이 국회 출석을 하지 않아 불구속 기소한 사례가 있지만, 이조차도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검찰은 설명함) 사실 기소유예 처분이 다반사였던 그간의 경향에 비춰볼 때, 약식기소하면서 벌금 처분한 것도 관례에 비해 엄하게 처리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처리 결과를 발 표하면서 "(저희가) 고민한 것은,  일반인 이었으면 (처분을) 얼마로 했겠는냐? 이거보다 (처분이) 약할것 이거든요. 재벌이라고, 돈 많다고, 더 많이 하고 그건 아니거든요."라고 말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논리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의 0.0000097% 벌금'은 가볍다. 현행 제도에서 국회 출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재벌들이 재산의 0.0000097%만 납부하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건, 국회 출석과 관련된 법과 제도에 구멍이 있다는 뜻이다. 국회가 기관 스스로의 권위를 확립하고, 국민의 대표로서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해서 돈으로 대가를 치르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강제 절차를 입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정조사나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법관의 영장 심사를 거쳐 강제 구인장을 받은 것도 방법이다. 0.0000097%는 정말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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