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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참나무 에이즈'…고궁까지 위협

[취재파일] '참나무 에이즈'…고궁까지 위협
'참나무 에이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진짜 에이즈는 아니고 '참나무시듦병'이라고, 참나무만 걸리는 병을 말합니다. 한 번 걸렸다하면 완치가 안 되고 고사할 확률이 극히 높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최근 병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북한산에 감염된 참나무만 160만 그루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 병이 이제 서울 시내 고궁의 아름드리 고목들까지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종묘를 가봤는데,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종묘에는 참나무가 천7백 그루나 될 정도로 주된 수종이 참나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10% 정도인 150그루가 참나무시듦병에 감염돼 있었습니다. 이 중 60그루는 회생이 불가능한 데다 전염 우려도 있어 이미 베어냈고, 나머지 90그루도 살충제를 뿌리고 비닐로 나무를 감싸는 응급처치를 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더 안타까웠던 건 이 나무들이 대부분 고목이라는 점입니다. 잘려나간 나무 밑둥의 지름이 적어도 50센티미터 이상, 큰 건 1미터가 넘는 것도 많았습니다. 전부 50년 이상 자란 나무들이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창덕궁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관리사무소 측은 지난 해 참나무시듦병에 걸린 나무 43그루를 베어냈고, 올해 안으로 90그루를 더 베어낼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체 참나무 3,800그루 중 13%인 500그루에는 벌레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이 3미터 이상의 끈끈이 비닐을 덮어놨습니다. 이 나무들도 일제강점기때쯤 심어진 100년 가까이 된 나무가 많았습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오며 살아온 고목들도 참나무시듦병의 습격 앞에선 속수무책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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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국립공원, 고궁할 것 없이 요즘 참나무시듦병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요?

먼저 이 병이 어떤 병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참나무시듦병은 광릉긴나무좀이라는 벌레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릉긴나무좀은 2~3밀리미터 정도 되는 작은 벌레로 날 수도 있습니다. 수컷이 참나무에 구멍을 파고 집을 만들면 암컷이 들어가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이 암컷의 등껍질에 있는 곰팡이균이 나무에 침투하면서 병이 발생하는 겁니다.

결국 벌레가 나무를 죽이는 게 아니라 벌레에 있는 곰팡이균이 나무를 죽이는 셈이라 방제가 쉽지 않습니다. 살충약으로 벌레를 죽여도 이미 들어간 곰팡이균이 나무의 물과 영양분 통로를 막아 죽게 만드는 겁니다. 실제로 병에 걸려 베어낸 나무마다 잘린 단면을 보니 벌레가 파고다닌 통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옆자리마다 검푸른색 곰팡이가 번져 썩어 있었습니다. 이 벌레 유충은 문제의 곰팡이균을 먹고 자라 또다른 나무로 이동한다고 알려졌는데요, 이 때문에 산림청이나 각 지자체는 끈끈이 비닐을 나무 둘레에 감아 벌레가 못들어오게 막거나 죽은 나무를 베어낸 뒤 비닐로 씌워 전염을 막는 게 고작인 상황입니다.

지금도 전문가들은 이 병의 정확한 메커니즘과 치료법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 병이 외래종은 아니라는 겁니다. 병이 처음 우리나라에 나타난 건 지난 2004년부터지만, 광릉긴나무좀은 1930년대에도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 병이 잠잠하다가 2000년대 들어 창궐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대기오염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천적도 없고 마땅한 치료약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미국이나 이웃나라 일본도 이 참나무시듦병으로 참나무 생태계가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개미를 광릉긴나무좀의 천적으로 키우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데,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합니다. 이 땅에 참나무 씨가 마르기 전에 치료약이든 천적이든 해결법이 시급히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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