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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통스런 '푸어' 시리즈는 계속된다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소호푸어' '리타이어푸어'에 '에듀푸어'까지..

[취재파일] 고통스런 '푸어' 시리즈는 계속된다
유행어나 신조어에는 그 사회의 분위기, 관심사항, 고민거리가 그대로 반영되곤 한다. 저성장에 불황 장기화가 점쳐지는 지금, 주변에서 회자되는 화두는? 다름 아닌 '푸어' 시리즈다.

가장 많이 들어본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하우스 푸어(House poor)'일 것이다. 빚을 내서 집 하나만 갖고 있는데, 집값은 떨어지고 이자부담은 원금상환 시기와 맞불려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자연히 실제 소득은 줄어들어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계층이다.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어떤가. 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이다. 일자리는 있다고 하지만 절대 임금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고용 안정성도 현저히 떨어진다.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  사회에 대한 불만을 높이는 요인일 뿐 아니라 불규칙적인 고용-비고용 상태의 반복은 체계적인 노후설계는 커녕 현실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게 만든다. 전체적인 고용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임시 일용직이 늘어나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워킹 푸어'가 양산되고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한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들이 획기적인 상황 개선의 계기를 만나지 못하고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바로 '리타이어 푸어(retire poor)'에 직면한다. 젊은 시절 노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빈곤해진 노년층을 뜻한다. 의학의 발달로 기대 여명은 계속 늘어나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는데 은퇴 후 그 긴 시간을 버틸 소득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과거 부동산과 자녀가 이런 은퇴길의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젠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소호 푸어(SOHO poor)'라는 말도 있다. 생계형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내수는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쟁이 과열돼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본인 인건비도 안 나오는 정도로 수입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다. OECD 최고 수준인 자영업 진출 비율, 한 집 건너 하나에 음식점, 주점, 노래방이 즐비한 주변을 보면 '소호 푸어'로 분류될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일부는 은퇴 후 퇴직금으로 자영업에 진출해 제2의 인생을 꿈꾸다가 오히려 빚만 떠안고 폐업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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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에듀푸어(Edu poor)'까지 등장했다. 교육열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자녀 교육비는 가장 나중에 줄인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물론 불황 속에 최근엔 사교육비 지출액이 소폭 줄어드는 일도 나타나고 있지만, 절대 지출액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가계들의 소득 대비 교육비 지출은 상당히 부담스런 수준인 게 사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빚에 허덕이면서도 교육비는 과다하게 지출하는 '교육 빈곤층'이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분류한 방법은 이렇다. 교육비 지출이 있는 전체 가구의 소득(433만 원) 보다 120만 원 이나 모자라는 313만 원 정도 버는 가구들인데, 교육비는 평균 51만 원보다 훨씬 많은 87만 원 정도를 지출한 것이다. 무려 소득의 28.5%에 해당되는 액수다. 자연히 가계수지는 적자다. 애초에 소득이 평균보다 낮은데도 교육비는 오히려 더 쓰기 때문이다. 의식주나 다른 생활에 필요한 지출은 줄일 수밖에 없거나, 빚을 지는 방법을 택하는데, 멀리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이런 가구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본인이 당사자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개별 가정경제에는 삶의 질이 떨어지는 요인이 되고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내수 부진을 촉발할 수 있다.

'교육 빈곤층'은 40대가 가장 많고, 대졸 중산층이 대부분이었다. 더 이상 급격한 신분상승이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교육 말고는 딱히 기댈 게 없다보니 자녀 교육을 과감하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도 구제할 수 없다는 가난. 요즘 우리 주변에 이렇게 다양하게 가난이 존재한다. 각각 이유도 많고, 나타나는 모양새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하나로 모이는 것은, 인간이 사는 이유인 '행복한 삶의 질'을 우선 순위로 둘 수 없게 끊임없이 경제적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들 계층은 현 상황에선 절대 빈곤자들은 아니겠지만, 자신들을 'poor'로 묶은 원인들이 달라지지 않고, 주변 경제 환경도 여전히 부진하게 이어간다면, 시간이 흐른 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우려도 존재한다.

'poor' 계층이 양산되고 또 양산되는 동안 중산층은 얇아져만 간다. 지난해 옥스퍼드 사전은 그 해의 단어로 ‘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한 바 있다. 고용사정이 안 좋고 빚 문제에 시달리다 보니 중산층이 급감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중산층'이 '신 빈곤층'으로 쏟아져내려오는 상황, 해결은 요원한데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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