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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는 가난하다"…경제주체들, 자신감을 잃다

98%가 "계층상승도 못할 것"..패배감 표출

[취재파일] "나는 가난하다"…경제주체들, 자신감을 잃다
최근 경제뉴스를 전하면서 거의 한건도 좋은 소식을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내수 부진은 심화되고, 수출 증가율도 둔화돼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향해 직행하고, 부동산 경기는 각종 부양책이 무색하게 얼어붙은 상태가 계속되고, 대출 연체율은 높아지고,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온통 부정적인 소식을 쓰면서 맘이 편할 리가 없다.

그런 가운데 민간경제연구소가 내놓은 한 가지 보고서가 약간 과장하자면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을 줬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경제주체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스스로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50%에 달했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저소득층을 집계한 비율이 15% 정도니까 무려 3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5명 중 1명은 '과거보다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고 응답해 반복된 위기를 겪으면서 사정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스스로를 중산층은 된다고 말한 사람은 46%. 통계청의 중산층 비중 64%와 역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국민 절반이 스스로를 저소득층이라 칭하는 현실. 어떻게 봐야 할까.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보고서의 제목을 '중산층의 자신감이 무너지고 있다'라고 썼다. 즉 대단히 부유하진 않아도 성실히 살다보니 사회에서 중간쯤은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계층이 중산층이라고 본다면, 이제는 나는 그것조차도 안 된다는 '자기비하' '피해의식'이 어느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심리적 위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현상일까.

흔히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심리적인 요인이 경제 주체의 결정, 활동 등에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내수 부진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이 역시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해 씀씀이를 줄이다보니 비롯된 결과다. '절약이 미덕'이기만 하기 어려운 이유가 돈이 돌고 돌아 성장의 밑거름이 돼야 하는데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수출 경기 둔화와 맞물려 국가 경제 성장률이 크게 부진해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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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고 평가한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응답을 보니 현실이 그대로 묻어났다. 20대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꼽았고, 30대는 '대출이자' '빚 증가' 등을 말했다. 결혼 후에 전세자금을 마련하거나 주택 대출을 받아서 생긴 부담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40대는? 짐작 가능하지 않은가? 바로 과도한 자녀교육비 지출이었다. 한 달에 사교육비로 상당한 액수를 쓰는 우리 가정에선 과도한 교육비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고질적인 문제지만, 답답한 교육 현실은 전혀 개선되질 않고 있다. 주로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있는 40대에겐 교육을 안시킬수도 없고, 계속하자니 노후대비는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할 노릇일 것이다.

향후 계층상승이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어려울 것'이란 응답이 무려 9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계층상승이 어려운 이유로는 '양극화 진행'(36.3%), '체감경기 부진'(21.5%), '좋은 일자리 부족'(12.1%), '과도한 부채'(11.4%) 등을 꼽았다. 현실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기대감과 희망이 꺾인 우울한 느낌이 보고서 활자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듯 했다.

중산층을 왜 '허리'라고 부르는가. 물리적 위치가 가운데라서만은 아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가 계층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양극화를 줄이고 비교적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두툼하게 형성돼 내수 기반을 닦아줘야 가능한 것이다. 씀씀이 측면 뿐 아니라 사회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도 적당한 중산층 규모가 유지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하다. 난 사회에서 낙오자다'라는 등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경우 '패배주의'나 '피해의식에서 촉발된 사회 부적응자'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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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런 중산층의 붕괴를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실질소득 감소로 실제 외형상의 중산층이 줄어드는 것 외에, 정서상의 위축으로 아직 경제력은 중산층에 해당하는데도 기어이 스스로를 저소득층으로 끌어내리는 계층 역시 잘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복지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각각의 연령층에서 나타난 어려움, 20대는 일자리, 30대는 주거안정과 가계부채 연착륙, 40대는 사교육 문제 등의 사정이 복합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중산층의 자신감이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너도나도 '으샤! 으샤!' 할 수 있는 활기, 물론 자칫 과도하면 거품을 유발할 수 있지만, 너무 침체에 빠져버린 현재 경제 상황에선 꼭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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