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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저성장시대 새 고민…'남아서 문제'

공급과잉 현실화…태양광 철강 LCD 등 '치킨게임' 돌입

[취재파일] 저성장시대 새 고민…'남아서 문제'
평소에 교훈으로 새기는 사자성어가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과유불급'을 떠올린다. 지나친 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균형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꼭 맞추듯 일이 진행되진 않는 법. 어떤 일에서든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하는 일이 늘 발생하는데 경험으로 볼 때 부족해서 문제가 된 것보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맺고 끊음에 있어서도, 자녀에 대한 의존이나 기대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과유불급'이란 말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과유불급'은 경제상황에도 적용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될 것임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세계 각국이 인위적인 부양책을 써서라도 성장률을 높여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저성장이 갖는 부정적 딜레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요가 위축되면 각종 설비와 제품은 공급과잉 상태가 되고, 재고가 쌓이면 가격은 더 떨어지고, 기업들 채산성은 악화되고, 고용이 부진해지면 가계 실질소득 감소를 가져와 다시 소비를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돈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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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업계에서는 공급과잉의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철강재. 지난 5월말 기준으로  국내 철강재 재고량은 451만9천681t으로 1년 전에 비해 19% 늘었다. 철강재  생산량이 거의 늘지 않았음에도 이처럼 계속 재고가 쌓이는 것은 내수 판매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건설업, 조선업 등이 부진하고 위축되니 재료로서의 철강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 중국 철강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철강공업협회는 올 1분기에 중국 철강업계가 모두 10억 위안이 넘는 적자를 냈다며 철강업계 전체가 손실을 낸 건 금세기 들어 처음이라고 밝혔다. 과잉 공급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유럽이 경기 회복이 더뎌진데다 중국 부동산 규제 장기화까지 겹친데 따른 현상이다. '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철강업체에 닥친 매서운 겨울은 중국 제조업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란 해석이다.

LCD는 어떤가. 대표적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품목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TV수요 감소는 LCD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고, 이는 LCD 가격 급락으로 연결돼 제조업체들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앞으로 런던올림픽 특수 등을 기대하고 있지만 경기 자체가 워낙 불투명한 상황이라 낙관만 할 수도 없다.

태양광 설비도 공급과잉으로 가격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 그린에너지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2007년 호황때 너도나도 태양광 신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불황으로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태양광 산업의 핵심원료 중 하나인 폴리실리콘 가격의 경우 2010년 하반기만 해도 킬로그램당 80달러 내외였는데, 현재 20달러대 수준으로 급락했다. 가장 큰 태양광 시장인 유럽의 불황에다 중국의 물량공세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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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마찬가지 경우다. 특히 재정위기에서 촉발돼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메이저 자동차 회사로 유명했던 만큼, 상황이 어려워지자마자 생산설비가 과잉인 점이 상당한 불안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흔들릴 경우 대량 해고는 물론 유럽 전체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럽 내 자동차 생산설비 과잉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지금껏 해결을 미뤄왔다. 경기침체로 차량수요가 줄어들면서 모건스탠리는 지난 2007년 이후 서유럽에서 자동차 판매는 14% 감소한 사실을 감안할 때 연간 150만대 수준의 생산량 감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까. 연관 산업, 협력업체가 워낙 복잡하게 얽힌 산업이라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다.

결국 이제는 넘쳐서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됐다.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과거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투자했던 기업들은 고스란히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누가 향후 경기상황을 예측할 수 있나. 수요 전망치에 기반해 공급량을 정하는 게 통상적인 기업들의 재고관리 방법일 텐데, 위기가 반복적으로 상시화 되고 장기화 되면서 수급상황을 예측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다. 상당기간 '저성장'이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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