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달걀 맞은 건 저라고요!"…'형님'은 왜 발끈?

[취재파일] "달걀 맞은 건 저라고요!"…'형님'은 왜 발끈?
오늘 오전 저는 달걀 세례를 당했습니다. 생방송을 할지도 몰라 흰색 자켓에 검은색 스커트 차림으로 평소보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챙겨 입고 나왔습니다. 처음 꺼내 입었던 스커트는 노른자, 흰자로 범벅이 됐고, 노른자는 왼쪽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구두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꼭 그 달걀이 아니더라도, 다른 달걀이 또 제 발에 맞아 구두도 결국 달걀 범벅이 되었지만요. 하지만 저는 달걀을 던진 분들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오전 10시30분쯤 이상득 전 의원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 나타났습니다. 방송사 무선마이크를 여섯 개 뭉쳐서 대표로 들고 있던 제가 마이크를 들이밀기도 전에, 50대 아주머니 한 분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내 이 전 의원의 푸른색 넥타이를 쥐어 잡고는 "내 돈 내놔라"를 외쳤습니다. 이 전 의원은 넥타이를 아주머니 손에서 빼내면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내 법정 입구는 아수라장이 됐고, 그 와중에 달걀이 날아들었습니다.

지금 언론보도를 보면 이상득 전 의원이 달걀을 맞은 걸로 나가고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보자면 이 전 의원에게 날아든 달걀은 (어쩌다보니) 인터뷰를 위해 이 전 의원 바로 옆에 있던 제가 다 맞았습니다. 아마 제 발등에 떨어진 달걀 두어 개 중 하나 정도는 이 전 의원 오른쪽 양복 바지 밑단에 튀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영일대군, 상왕, 만사형통... 이명박 대통령 뒤에서 막후정치를 펼쳐온 실세 중의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은 이런 말로 통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인사 때마다 이 전 의원을 통하면 안 될 게 없다고도 알려져, 만사형(兄)통이란 말도 생겼습니다. 그런 형에겐 팔십 가까운 평생 동안 오늘이 가장 치욕스러운 날이었겠지요.

아수라장을 뚫고 법정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상득 전 의원은 변호인과 법원 청원경찰들에게 이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하냐."

달걀은 제가 맞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런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십니까? '저런 사람들'은, 대선 주자들이 선거철만 되면 달려가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팔고 야채 팔아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시중 은행보다 1~2% 금리 더 받아보겠다고 저축은행에 맡긴 서민들입니다. '저런 사람들'은 남의 집에서 파출부로 허드렛일 하면서 30년 넘게 모은 돈을 아들내미 장가 갈 때 전셋집이라도 얻어 주려고 이자 잘 쳐 준다는 말만 믿고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입니다.

지난 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당시, 저는 부산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에 출장을 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저런 사람들'의 "내 돈 내놔라"는 피맺힌 절규였습니다. 방송기자라 인터뷰가 필요해서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좋게 생긴 70대 할머니에게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내 돈 내놔라"라며 악을 쓰다가 이내 "내가 나이 20에 혼자가 돼서 안 해본 일이 없제. 떼밀이, 파출부 해서 평생 모은 돈 9천을 후순위챈가 뭔가 이자가 높다고 사라고 했제. 근데 홀라당 날렸다 아이가..."하면서 마이크를 부여잡고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마이크에 붙은 스폰지가 흠뻑 젖었습니다.

영업정지가 임박했다는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들은 예금자보호도 못 받는 후순위채를 노인들에게 '이자가 엄청 높다'는 말로 마구 팔았던 겁니다. 그렇게 부산저축은행이 날려 먹은 서민돈만 검찰 추산 10조 원 가깝습니다. 
이미지

오늘 법원에서 만난 분들은 그때 만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분들입니다. "젊은 사람이 굶고 다니면 안 된데이. 자식 같은 사람들이 왜 굶고 다녀"라며, 기사 마감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있던 제 입에 상추쌈을 넣어주셨던 그 아주머니도 만났습니다. 이분들이 던진 달걀을 맞아서 그분들의 돈을 찾아드릴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득 전 의원은 정두언 의원에게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을 소개받은 뒤, 호텔에서 밥먹고, 3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도 이 전 의원에게 인사값으로 3억 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밥한끼 3억 원.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한푼 두푼 아끼고 안 쓰고 저축은행에 차곡차곡 모아 놓은 돈을 저축은행 경영진들은 밥 한 끼 값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취재가 끝나고 달걀이 말라붙기 전에 닦으려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현장에 있던 경찰로 추정되는(말 그대로 추정입니다) 분의 무전기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법원 직원도 계란 맞았지? 그럼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할 수 있나 검토해봐." 달걀 제대로 맞은 저도 가만히 있는데, 누가 누굴 입건한단 말입니까. 정말 입건되고 형사처벌 받고 사과해야 할 '분'은 누구인가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