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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발행 3년…5만 원권 정착됐나

지난달 5만 원권 발행 사상 최고…명암 공존

[취재파일] 발행 3년…5만 원권 정착됐나
5만 원권이 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2009년 6월 첫 발행됐을 때만해도 전체 화폐 발행 잔액 중 5만 원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7.7%에 불과했지만 이젠 50%를 훌쩍 넘었다. 발행 액수도 2009년 6월 2조4835억 원에서 6개월 뒤인 2010년 2월 12조 원을 넘더니, 2년 만에 20조 원을 돌파했고, 이후 30조 원을 향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5만 원권이 인기를 끌면서 자기앞수표 거래 건수는 지난 2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월 자기앞수표 거래 건수는 모두 2770만 장으로 2009년 6월 5502만 장에 비해 50% 급감했다. 1만 원권도 역시 줄어들었다. 1만 원권 발행 잔액은 17조 원대로 줄어 2년 전과 비교해 2조 원 넘게 급감했고, 지난해 8월부터 5만 원권 발행 잔액이 1만 원권을 추월했다. 신사임당 그림 논란에, 화폐가 나온 후에는 접착부분 벌어짐 논란, 색깔이 5천 원권 지폐와 잘 구분이 안 간다는 지적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느새 5만 원권은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정착됐다.

이런 가운데 또 5만 원권 월별 발행 잔액이 최대치를 또 경신했다. 지난달 5만 원권 발행 잔액은 28조 6399억 원으로 전체 화폐 발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만에 7530억 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5만 원권 발행이 5월에 급증한건 가정의 달 영향이 큰 것으로 한국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을수록 5만 원 수요는 늘어난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전에 5만 원권 발행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경조사용 대표 지폐라는 이름값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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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권 발행 당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 비자금이나 뇌물 탈세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란 염려도 있었고, 수표 등 화폐 제조비용을 줄일 것이라는 효과에 대한 기대도 있었는데, 화폐 발행 3년이 지난 지금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5만 원권은 발행 목적을 달성했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이긴 하지만, 5만 원권이 1만 원권과 자기앞수표의 위축을 가져올 만큼 발행규모가 급증한 데 반해 환수율은 낮아 그 많은 5만 원권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견도 많다.

환수율이란 특정 기간 동안 한국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량 대비 다시 되돌아온 화폐량의 비율을 뜻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볼 때  5만 원권은 지난해 말까지 모두 43조4732억 원어치(8억7천만 장)가 발행됐는데, 이 가운데 환수된 건 17조5119억 원(3억5천만 장)에 불과하다. 1만 원권 환수율이 108%라는 점을 감안하면 40% 정도 되는 5만 원권 환수율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유는 5만 원권 가운데 상당액이 비자금의 은닉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5만 원권은 현금인데다 부피가 작은데 비해 액수는 상당히 크다. 5만원 권 100장을 묶은 한 다발을 스무 다발로 합치면 금새 1억 원이 되는데 무게는 고작 2킬로그램 정도고 높이도 22센티미터 정도라고 한다. 007가방에 5만 원권을 채우면 3억 원이 들어간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의혹은 실제로 최근 5만 원권으로 거액의 뭉칫돈을 조성해 은닉해 온 사례들이 적발되면서 더 신빙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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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이 민간사찰 은폐 대가로 건네받았다고 주장하는 5000만 원어치 돈다발은 5만 원권이 한국은행 발행 띠지도 풀지 않은 채 100장씩 10개 묶음으로 돼 있었다고 한다.

국세청이 고액 전문직 탈세를 잡다보니 거기에도 5만 원권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서울 강남에서 유명 여성전문병원 운영하는 한 의사의 오피스텔에 급습했더니 5만 원권 다발이 무려 24억 원어치나 발견됐다. 또 다른 강남 성형외과 모 원장은 비밀창고에 현금으로 받은 수술이 3억 원을 5만 원권으로 보관해오다 적발됐다.

지난해 4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발견된 110억 원 돈뭉치의 상당 수가 5만 원권이었고, 서울 여의도 한 물품보관업체가 보관하고 있던 10억 원 박스도 5만 원권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은행은 5만 원권 환수율이 낮다고 불법자금으로 잠겨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며 발행한 지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아 환수율이 낮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런 몇 가지 사례만 들어봐도 얼마나 많은 5만 원권이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상태로 고이 모셔져 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지갑을 한결 얇게 해주면서 5만 원권이 빠르게 정착됐지만, 수표 뒷면에 이서해야 했을 때보다는 돈 씀씀이가 조금은 헤퍼진 것도 같고, 탈세나 뇌물, '검은돈'의 주요 수단이 되는 씁쓸한 이면도 공존하는게 발행 3년을 맞은 5만 원권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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