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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한폭탄 가계빚, 어느새 익숙한 악재가 된 건 아닌가?

국내외 전문가 '가계빚, 시간이 없다'…질과 양 모두 악화

[취재파일] 시한폭탄 가계빚, 어느새 익숙한 악재가 된 건 아닌가?
새로울 것도 없는 고질적 악재 '가계빚'에 대한 경고가 새삼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들어 가계대출 연체율의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대출관리에 나서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대한상의는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OECD 평균보다 훨씬 높고, 지금 구제 금융을 신청한 스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보고서를 통해 제기했다. 외국계 증권사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은 권혁세 금융감독원장과의 만난 자리에서 다른 어떤 문제보다 '가계빚 구조조정에 대한 중장기적인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도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가계부채 문제를 꼽고 있다.

어떤 문제가 '고질적'이라는 것은 잘 고쳐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제점을 그냥 당연시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 생긴다. 아마 가계빚이 딱 이런 경우일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문제점이 지적돼왔고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가계빚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800조, 900조, 1000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왔다. ‘시한폭탄’이다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경고성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가운데 사람들 뇌리에는 그냥 '가계빚이 많은 것이 참 문제다'라는 인식이 박혔을 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시급성이라는 측면에선 오히려 반감되는 효과를 낳았다.

최근 한 금융통화위원을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금통위원들이 대폭 물갈이 되고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살얼음판을 겪고 있는 금융시장 상황에서 여러 가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무수한 경제지표들을 들여다보겠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뭐냐고 물었다. 그 위원은 사적인 자리에서의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금통위원은 개별 의견을 공적인 자리에서 피력할 수 없다) '가계빚' 문제를 꼽았다.

기자 같은 경우도 하도 가계빚 얘기를 많이 듣고 반복적으로 기사를 써서 그런지, '그렇죠. 가계빚 문제죠' 정도로 일상적인 응답을 했다. 하지만 그 위원은 생각보다 가계빚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고, 구조적으로 나빠지고 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악재는 바로 해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핵심을 짚었다.

그렇다.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 문제는 부동산 경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가계빚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과거 부동산 거품이 왔을 때마다 크게 늘었다. '집은 한 채 있어야 한다',  '집은 빚을 얻어서 사고 추후 벌어서 갚아나가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앞으로 집값은 더 뛸 것이다' 등 부동산 불패신화 속에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부동산 경기가 최소한 물가 상승률 이상 정도로 현상 유지만 해주더라도 가계빚이 급속히 붕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최근의 싸늘하게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는 여러 번의 대책에도 꿈쩍하지 않으며 더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자연히 담보가치가 떨어지니 대출은 부실화되고, 이자 상환기간이 끝나 원금상환이간이 겹치게 되면 가계는 큰 타격을 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계 부채 대책이 필요한 이유로 앞으로 불황이 4~5년간 지속할 수 있다는 의견을 꼽았다. 경기가 앞으로 회복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다면 빚 감당할 여력도 생기겠지만,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는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금리를 많이 낮췄기 때문에 가계부분의 부채축소(디레버리징)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현재까지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가계 부채는 위기를 거듭할 때마다 ‘폭탄 돌리기’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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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상황은, 부채의 양과 질 두 측면에서 모두 질이 좋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양적인 측면으로  가계부채는 지난 3월 말 현재 911조원이지만 사실상 가계에 해당하는 자영업자의 빚을 합치면 1,000조원을 훌쩍 넘는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3%보다 8%포인트 높다. 그리스(61%)보다는 20%포인트 높고, 스페인(85%)에 근접한 수준이다. 향후 경제가 자발적으로 가계부채를 해소할 능력으로 주로 보는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다른 국가들보다 열악하다.

질적인 측면을 보면, 금리 부담이 높은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반갑지 않다. 가계빚 규모를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 속에 은행권이 대출심사를 강화하자 자연히 풍선효과가 나면서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 대출이 늘었다. 현재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 용자 250만 명이 연 30% 이상의 고금리를 물며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잘 살펴봐야 할 것이 빚을 내서 빚을 갚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보니 집단대출을 중심으로 올해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고,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도 올라가는 등 일부 지표상에도 이미 반영이 되기 시작했다. 정부도 가계부채 문제가 어떤 후폭풍을 야기할지 그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수차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고, 금융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미시적인 조정에도 나섰다. 부동산 경기가 회생불가능 판정 비슷하게 받은 상황에서도 DTI 등 대출규제를 푸는 방법에 손을 대지 않은 것도 가계빚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옮아갈 기미를 보이며 불안감이 가중되고, 미국 중국 경기둔화 속에 경기부양 움직임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중앙은행도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지만, 가계빚 문제를 자칫 자극할까 그 부분도 쉽지 않다.

정부의 이런 고민들이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분기엔 가계부채가 총액 기준으로 3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서 증가세가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해석도 등장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경기둔화, 소득감소, 이로 인한 소비와 내수 부진 때문에 빚 규모가 줄어든 효과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니 신규 주택담보대출 줄고, 신용카드 사용 같은 외상거래도 일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이걸 잡으려면 저게 걸리고, 여러 시장 변수가 서로 얽혀서 절대 간단치 않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자들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고 정책당국의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반드시 단기, 중기, 장기로 가계빚 구조조정을 위한 대책이 좀 더 짜임새 있게 마련돼야 한다.

이제 가계부채는 내수를 위축시키는 단계를 넘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금융 부문 자산 부실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단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다중채무 등 부실 가계부채의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은행권 공동기구를 설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채권자로서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듯이 가계부채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같은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 고정금리 유도, 대출구조 장기화 같은 단기적 대책을 세우고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확보에 주력하는 ‘정공법’이 정책 기조로 유지돼야 한다.

아직까진 가계빚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킬 정도까진 치닫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각계의 지적처럼 더 시급하게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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