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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입화장품 부진, 불황 탓만일까?

반값화장품 불신 없앤 국산제품 경쟁력 주효...유통채널 다양화도 한몫

[취재파일] 수입화장품 부진, 불황 탓만일까?
불황 '무풍지대'로 여겨지며 한국 시장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던 수입화장품들의 급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백화점에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목 좋은 1층에 차지하고 있는 매장이 바로 수입화장품 브랜드들이다. 에스티로더, 크리니크, 랑콤, SKII, 키엘 등 백화점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향긋하고 상쾌한 향기를 만들어낸 것이 이 화장품들이다. 지난 5년간 이 브랜드들은 높은 성장세를 이어왔다. 3년 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잘 했기 때문에, 수입화장품은 불황을 빗겨가는 무풍지대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주요 백화점에서 올해 들어 1월부터 5월까지 이들 수입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6%까지 감소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과 맞물려 돈 있는 사람들도 지갑을 닫을 정도로 불황의 골이 깊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고가제품 매출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불황이다. 경제사정이 좋을 때만큼 돈을 주저 없이 쓰기 어렵고, 쓰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좀 더 품질대비 가격이 저렴한 것을 선택하는 소비패턴이 나타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00만 원대 제품까지 등장할 정도로 고가정책을 유지해왔던 수입화장품들은 '비쌀수록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인지될 것'이라는 프리미엄 마케팅을 벌여왔지만, 경제 상황이 싸늘하게 얼어붙자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측면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화장품 산업만 놓고 보면, 수입화장품 매출 감소세는 불황 이상의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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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내 화장품의 이유 있는 약진이다. 그것도 고가와 중저가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브랜드가 구성돼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고가에선 한방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 '후' 등을 꼽을 수 있다. 설화수는 일부 백화점에선 화장품 브랜드 매출 1위 자리를 수입브랜드에서 빼앗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 한방을 기반으로 우리 강점을 살린 이 브랜드는 제품의 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중저가에서는 미샤, 더페이스샵, 네이쳐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스킨푸드, 토니모리 등 소구하는 연령층, 제품의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이런 브랜드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싼값'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반응이 많았다. ‘값이 싼 만큼 뭐가 부족하겠지' 라는 소비자의 떨떠름한 반응은 이 브랜드들이 지속적으로 품질 수준을 지켜내면서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중저가 화장품이 '반값화장품'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은 가장 큰 일등공신은 정보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중저가 브랜드샵들이 잘 된 이유는 소비자들이 마음껏 체험을 할 수 있게끔 매장 진열을 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화장품을 언제든지 가서 써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중저가 화장품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 등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직접 제품을 써보고 그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값도 착하고 품질도 괜찮다' '다른 비싼 명품 못지 않다' 등 직접 써본 소비자들이 공유한 후기들이 퍼진 것도 한몫했다.

국내 브랜드들도 이런 새로운 마케팅 채널을 놓치지 않고 이용했다. 블라인드 테스트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제품의 질을 강조하는가 하면, 한류 스타 등을 동원해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시도했다. 이런 마케팅 노력과 함께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것과 맞물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도 과거에는 주로 수입화장품을 구매해갔다면 이제는 국산화장품을 여러 개씩 사서 돌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밀집지역인 명동은 물론 인사동 등에는 화장품 가게가 너무 많아서 길거리 분위기를 훼손시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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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저가 화장품 전문숍들은 최근 평균 30%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며, 시장규모가 2조5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이미 전체 화장품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 것이다.

또 한 가지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유통채널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화장품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장은 홈쇼핑 시장이라고 한다. 지난해 시장규모가 4천억 원이 넘었고 올해 다섯 달 만에 지난해만큼의 물량을 다 팔았다고 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실제로 TV채널을 돌리다보면 수시로 화장품 판매하는 홈쇼핑을 보게 되는데, 주로 기존 제품도 있지만, 메이크업아티스트 들이 스스로의 경험에 기반해 필요한 요소들을 반영해 화장품을 만들어낸 제품들이다.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가져다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신상품들을 꾸준히 등장시켜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 비해 지금은 홈쇼핑, 중저가 브랜드샵, 백화점, 대형마트 등까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다.

또 다른 이유는 화장품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다. 예전에는 화장품이라는 게 직접 써보지 않고는 내 피부에 맞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격을 기준으로 그 제품의 질을 결정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체험할 수 있고 혹은 친한 소비자들끼리 정보를 교류하면서 사람들의 인식 자체에 명품 화장품과 싼 화장품 사이에 그 가격 차이를 줄 만큼 성능의 질이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입 명품 화장품을 고집하기 보다는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가격대의 화장품을 골고루 써보는 소비형태가  많이 늘어나게 됐다. 예를 들면 한 브랜드의 스킨부터 마스카라까지 다 통일해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저가 화장품을 시도하더라도 실패할 위험이 적어졌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상황에서는 수입화장품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소비자 심리가 생겼다는 해석이다.

국산화장품이 잘해서인 이유를 살펴봤는데, 수입화장품이 못한 부분도 있다. 수입 화장품 업계가 고가 전략을 고수하면서 백화점 판매에 주로 의존하는 점도 매출 부진의 이유가 됐다. 경기 부진 때문에 국내 백화점의 1인당 구매건수와 구매단가는 하락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또 한-EU FTA 이후에도 관세인하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콧대높은 영업으로 소비자에게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매출이 주춤한다고 갑자기 수입화장품들이 대중적 이미지 전략을 펼 수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감성제품인 화장품은 소비자들에게 만족스런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경기 둔화 국면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가제품이 자신에게 만족스런 경험을 제공한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똑똑한 소비행태'를 계속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화장품들이 변덕스런 소비자를 잡기 위한 노력 없이 그저 전통적인 브랜드 파워와 고가 정책을 통한 ‘선망 마케팅’에만 의존한다면 적어도 영리한 경쟁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국내에서 계속 승승장구한다는 장담을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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