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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긴축과 성장' 과연 공존가능한 명제인가?

때때마다 다른 오락가락 '긴축' 잣대..'정치적 레토릭'화 경향

[취재파일] '긴축과 성장' 과연 공존가능한 명제인가?
유럽발 악재, 두더지 오락기 마냥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 하다가 벌떡 일어나 시장을 흔든다. 전문가들마다 파장이 어떻게 될지 견해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슷한 부분은 이것. 유럽발 악재에 대한 시장의 가장 큰 두려움은 과연 이 파장이 어떻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튈지 가정만 할 뿐 실제로 가늠하기 어렵다는데 있다는 것,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리더십과 시장이 믿음을 줄 만한 해법이 부재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다.

해법을 논하는 가운데 최대 화두는 ‘긴축이냐 성장이냐’ 에 관한 논란이다. 줄이려면 줄이고, 키우려면 키우는 거지, 어떻게 두 가지가 공존 가능하냐, 말 장난스럽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럽 뿐 아니라 경제학계에서도 어떤 해법이 현재 유럽에 더 적합하냐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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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그리스 등 위기 진원지 국민들이 ‘긴축 거부증상’을 나타내는 것에서 시작돼 ‘긴축이 과연 위기를 해결하는 모범답안인가’ 라는 의문으로 확산됐다. 실업률이 늘고 성장 동력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유럽국에 긴축일변도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재정을 방만하게 써서 나라살림이 거덜 났기 때문에 지출을 줄여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겨졌고, 독일을 필두로 유럽중앙은행 등은 이 해법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 처방전이 위기국가들에게 재정상 여력을 안겨주지 못한다며,  긴축이 위기를 오히려 더 심화시킨다는 ‘긴축의 역설’에 대한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긴축정책은 유럽 경제에 있어 자살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지금은 경제가 워낙 장기간 침체를 보이고 고용지표 등이 인위적 부양 없이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예외적 처방이 필요하다" 는 입장이다.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도 "지나친 긴축은 저성장을 불러오고,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을 더 높여서 결국 젊은 세대에 씻을 수 없는 부담을 지울 것"이라며 단기적인 성장 지원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긴축 반대론에 힘을 보탰다.

반면 독일을 필두로 기존 신재정협약을 탄생시킨 유럽중앙은행 등은 “기존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 그것이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맞서고 있다. 긴축이 단기적으로 성장을 제약할 수 있지만 빚 규모가 줄면 이자율이 떨어지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꾸준히 아껴쓰는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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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은행권 부실로 몸살을 앓던 스페인이 결국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이달 17일 그리스 2차 총선을 앞두고 시장의 대혼란을 막기 위해 스페인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작용한 탓인지 결정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리스에게는 야박스러울 정도로 까다롭게 굴었지만, 스페인에 대해서는 구제금융 제공에 따른 긴축 조건도 달지 않았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적용되고 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확실히 살리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도 ‘긴축’에 대한 잣대가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됐다. 몸집이 그리스의 몇 배는 큰, 그래서 시장에 줄 충격도 더 막대할 수밖에 없는 스페인의 ‘버티기 작전’에 굴복해 긴축요건을 약하게 해주고 부실은행을 직접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긴축과 성장을 둘러싼 논쟁,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일단은 ‘긴축 일방주의’는 제동이 걸린 듯하다. 긴축일변도 해법에서 성장이 부각되면서 긴축의 속도가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약간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의 입김은 세다. 돈을 대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유럽악재가 이제 금융부문 뿐 아니라 실물 경기 둔화로 전염되면서 각국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 총재와 미국 버냉키 연준 의장은 문제가 있으면 돈을 풀 준비가 돼있다는 정도의 원론적 언급을 했고, 중국은 실제 성장률 둔화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인 부양책은 ‘진통제’일 뿐이란 지적이다. 결국 ‘치료약’은 되지 못하며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 수술’은 더욱 아니다. 때문에 긴축이냐 성장이냐, 경기부양이냐, 한발 뒤에서 그 논쟁을 바라보면 덧없다는 해석도 있다. 본질적으로 문제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회의론이 그것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구조조정도 하면서 성장도 달성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 세계적인 정치의 해를 맞아 현실 가능성보다는 일단 좋은 얘기는 다 쓰는 ‘정치적인 수사, 레토릭’ 쪽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다소 우려스럽다. ‘긴축과 성장의 조화’ ‘성장과 균형을 이룬 긴축’ ‘성장률 제고와 지속가능한 공공재정 달성’ ‘포용적 성장’ 등이 그것이다. 말은 아름답고 훈훈한 듯 하지만 자칫 어느 하나 달성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고용률’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긴축’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바로 가뜩이나 부진한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더 떨어뜨려 경제주체들의 여력을 쪼그라들게 하기 때문에 절대 거시경제적인 선순환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제의 비효율을 떨어내는 구조조정, 그런 측면에서의 긴축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성장세가 위축돼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자리 나누기이던, 공공일자리이던 정책적, 인위적 개입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성장’이라는 본질이 어떠한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돈을 풀어 인플레를 조장하는 것으로 끝나고 그걸 성장이라고 우기는 ‘가짜 성장’이 후에 어떤 부작용을 남기는지 많은 선례를 봐왔다.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가 화답하듯 회복되고, 세수가 늘어나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처럼 이상적인 것이 없겠지만,  현재 그리스에서 보듯 제조업 기반이나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엔 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선순환이 달성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성장과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달성하겠다.’ 는 구호가 장밋빛 미래를 선동하는 정치적인 레토릭에서 끝나지 않고 뭔가 의미 있는 결과물로 도출될 때까지 시장은 유럽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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