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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증권사들 '곡소리'…비상경영 돌입

주식 채권시장 돈이 안돈다…대형사도 적자 위기감 팽배

[취재파일] 증권사들 '곡소리'…비상경영 돌입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한 실물경제 둔화로 많은 기업들이 유무형의 피해를 입고 있다. IT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수출 감소에 부진한 실적을 내고 있고, 화학 철강 조선 등은 앞으로 세계 경제에 당분간 지속될 저성장 국면 속에 공급 과잉 우려까지 겹쳐있다.

또 하나 금융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 있다. 바로 주가 하락과 거래 대금 급감 등 경영 환경이 급속히 불투명해진 증권사들 얘기다. 증권사 임원들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비용은 줄이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놓고 골머리를 싸매고 거의 매일 대책회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곡소리'가 나는 이유는 주식, 채권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해 하루 거래대금이 6조5천억~7조원은 돼야 국내 증권사들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투자심리는 위축돼갔고, 최근 거래대금은 5조원대로 추락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한 달 동안 138포인트, 7% 가량 급락했다. 자연히 거래대금도 급감하는 추세다. 2월에 143조원을 기록했던 거래대금은 3월에 112조원대로 크게 줄었고, 4월에는 25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조원 아래로 주저앉았다. 5월 거래대금도 석 달째 감소추세를 이어가며 98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이 줄어든 것인지는 다른 위기 때와 비교해보면 보다 극명하다.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코스피가 12% 가까이 급락했을 당시에도 거래대금은 178조원 정도가 됐으니까, 거의 절반 정도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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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형 증권사가 더 상황이 심각하지만 현재는 업계 상위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달 업계 1,2위 증권사 법인 영업(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 투자자문사 등 기관투자자 주식위탁매매 담당)이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증권사 각 지점들 수익성도 형편없이 떨어져. 대부분 증권사가 지점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를 보면 이런 실적 악화는 예견됐던 일이다. 아무리 증권사들은 수익원을 다양하게 하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가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실적이 온전히 주식 거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천수답'구조가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 매번 지적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수익원을 급속히 확대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도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발맞춰 자본금을 늘린 증권사들도 18대 국회에서 개정안 통과가 무산되면서 사업계획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게다가 세계 금융시장이 모두 좋지 않다보니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규모도 크게 줄고 있다.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의 여파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뤄진 파생상품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회계연도 23개 주요 증권사의 파생상품 매매 총 순이익은 722억 원으로 전년도 4868억 원 대비 85%나 감소했다. 파생상품 매매 이익도 전년도보다 1조5980억 원 늘어났지만 파생상품 관련 손실 폭이 2조125억 원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순이익 규모가 급감한 것이다.

증권사들은 최근처럼 주식, 회사채, 기업공개(IPO) 등 자본시장에 돈이 돌아가는 주요 영역이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3대 수입원이 함께 나빠지면서 1분기보다 2분기 실적은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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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회사채 발행액은 3조2천억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할 때 57%나 감소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의 투자계획이 연기 또는 보류되자 자금 확보 차원에서 필요한 회사채 발행이 같이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금리가 저금리인데 굳이 회사채 발행해서 돈 조달할 이유도 적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권고 영향도 있었지만, 올해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매매수수료를 낮추면서 수익성은 더 악화되고 있다. 또 개미 투자자들 손해를 우려해 금융당국이 신용융자 보증금 비율을 40%에서 45%로 높이면서 빌려서 주식을 거래하는 신용융자 규모가 줄어든 것도 수수료 수입 감소로 이어지니 증권사 입장에선 악재다.

결국 증권업계는 이래저래 답이 쉽지 않은 고민을 해야 하는 국면에 처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어떤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증권사들은 먼저 비용 줄이기에 돌입했다. 구조조정 논의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지점을 축소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산출 가치는 수치화하기 어려운 리서치센터 감축 등도 검토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최근 창립 50주년을 맞았던 현대증권, 동양증권 등은 간략한 기념식만 갖고, 관련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오는 10월 창립 30주년을 맞는 삼성증권 역시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정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2월 홍콩 법인에 대해 철수에 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사 역시 연초 사업계획을 작성할 때부터 긴축 경영을 일부 반영했다. 증권사들은 대부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0~20% 전사적으로 비용절감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판매관리비, 업무추진비나 행사비, 회의비를 줄이고, 긴급한 사항을 제외한 비용집행을 자제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출이 위축되면서 제조업 경기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렇듯 금융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평시엔 안정적이고 쉬워 보이지만, 위기가 닥칠 때마다 휘청이는 불안요인도 된다.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이번 정권 초기의 비전은 대외 악재를 만나 이미 빛이 바랜지 오래다. 반복적인 위기가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어렵게 하는 한계가 있고, 특히 건전성과 안정성을 같이 추구해야 하는 금융 산업의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제자리에만 머물고 있는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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