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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꺼지지 않는 불꽃, 정경화의 샤콘느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성서와도 같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이 시대의 거장 정경화 씨가 평생의 숙원과도 같았던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왼손 부상을 극복하고 선택한 곡이 바흐였다는 것은 그녀가 이 곡을 얼마나 진중하게 접근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소프라노 조수미 씨는 그의 책에서 '한국에서 왔다'라고 했더니 '아. 정경화의 나라 말이군요'라는 대답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정경화 씨의 이름은 곧 한국이었던 것이죠.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브루흐 등등 그녀가 당대의 마에스트로들과 함께 연주했던 낭만주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이미 해당 레퍼토리의 레퍼런스로 불릴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달 31일과 이달 4일, 이틀 동안 명동성당에서는 정경화 씨의 무반주 바이올린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부상의 여파가 있었던 탓인지 정경화 씨의 날카로움은 많이 무뎌졌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그녀에게 연륜과 여유라는 선물을 가져다 줬습니다. 언제나 무대에서 당당하고 도도할 것 같았던 그녀는 이제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딸에게, 손녀에게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듯 그녀는 활을 그어갔습니다.

그 세월 속에는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연주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듯 했습니다. 아름다운 아다지오와 라르고에서는 풍성한 기쁨과 슬픔이 함께 녹아있었지요. 푸가와 샤콘느는 보는 사람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뜨겁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정경화 씨는 즐거워보였습니다. 그 즐거움이란, 먼 길을 돌아와 그녀의 본령인 연주에 다시 설 수 있다는 것, 그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 또한 그 연주로써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말없는 그녀의 바이얼린 속에 천 가지, 만 가지 말이 배어있어 오롯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힘이며 정경화씨의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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