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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긴축만이 답인가?' 경기해법 둘러싼 논란 가열

"긴축이 우리의 운명일 필요는 없다" (佛 올랑드 후보), "인플레 자극해 경기부양해야" (크루그먼 교수)

[취재파일] '긴축만이 답인가?' 경기해법 둘러싼 논란 가열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17년만의 좌파 대통령으로 달성된 올랑드 당선자.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면 긴축정책, 그러니까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경제학자, 각국 정부관료, 국제기구 관계자, 언론 등에 일성을 날렸다.

"(긴축정책을 밀어붙여온) 각국 정부 지도자들 너머엔 프랑스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긴축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에 이어 유럽 2위의 경제대국을 이끌 새 대통령이 '긴축' 중심의 유럽 신재정협약을 '확장과 팽창' 위주로 재협상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는 "긴축이 우리의 운명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재정을 아끼고 또 아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국민들을 호도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맬수록 경기가 더 침체돼 서민들이 체감하는 고통은 커진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자신은 성장과 번영을 달성해내겠다고 약속했다.

올랑드의 공약은 재정 긴축보다 정부 지출과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공공부문 투자를 늘리고 교사 6만 명을 충원해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경기를 부양시켜야 일자리가 늘고,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면 내수가 늘고, 그러면 기업 경기가 살고, 선순환 끝에 재정위기 극복이 되는 것 아니겠냐는 주장이다.

기존 '긴축주의' 재정위기 해법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그의 이 같은 접근법에 아직까지 시장은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모습이다. 그의 당선이 확정된 후 급한 불은 꺼나가고 있는 유럽위기 재연에 대한 우려로 유럽, 미국, 아시아 주요증시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프랑스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재정이 추가로 방만하게 운영된다며 프랑스 국가신용등급 하락, 국채금리 상승 같은 불안요인이 수면위로 등장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논란은 유럽뿐이 아니라 미국 최고 경제권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고 있다. 밴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기 논쟁이 그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높은 실업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처방은 미흡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미 제로금리로 금리수준이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 정책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경기 부양책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적극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현재 2%인 인플레이션 관리목표를 3~4%대로 높이면 장기적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가계나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보다 소비나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논리다. 인플레이션은 통상 부작용이 더 많은 명제로 해석되지만, 지금은 경제가 워낙 장기간 침체를 보이고 고용지표 등이 인위적 부양 없이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예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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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의장은 반박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자극받으면 물가는 더 오르고 가계 실질 가처분 소득은 줄고, 오히려 가계는 소비를 줄여 내수 위축,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킨다는 주장이다. 또 금리가 오르면 투자를 위해 대출받을 경우 부담이 커져서 기업 투자도 위축된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문제는 장기간의 경기침체 속에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시장의 회복력, 자생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감안할 때 저성장을 당연시하고 위축, 긴축을 절대명제로 내세우는 건 오히려 성장 동력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맞는지, 아니면 돈을 풀어 부양시키는 건 과거 잘못을 반복하는 것으로 물가만 올리고 실업률은 그대로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생길 것이란 의견이 맞는지,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다.

또 프랑스를 비롯해 그리스 등 유럽의 정치지형이 뒤바뀐 데는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도  이면에 깔려있다.  유권자들이 '성장 없는 긴축'을 거부한 셈이다. 긴축은 결국 서민과 사회적 약자만 더 가난하게 할 뿐이어서 양극화만 심화시킨다는 반발 심리다. 재정위기에 대해 긴축과 구조조정 일변도로 대응해 온 정책 방향을 성장과 고용창출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에서 확인된 유럽의 민심이라는 해석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묵묵히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던 우리나라 국민들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구조조정 반대 시위가 격화됐을 때 일부 언론들은 '한국에서 보고배우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국민들이 긴축에 동참해야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한국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그렇게 서민들이 동참한 결과 일반국민의 삶이 나아졌나? 의구심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높다. 즉 정부 지출을 줄이고 팍팍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의 경제 지표상 회복은 뚜렷했지만, 그래서 빨리 IMF 체제에서도 졸업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양극화가 커지는 부작용이 뚜렷했다.

좀처럼 세계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갖가지 해법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정부 정책이 있으면 시장은 대책이 있다'는 말처럼 정책의 효과는 짐작하고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타나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3%대 저성장을 기정사실화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세계 시장이 부진해 수출이 줄어서 자연히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장기저성장 국면을 당연시해 경제 규모의 위축을 초래하는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에 제조업 중심의 수출위주 경제구조를 개편하고, 서비스업을 획기적으로 일으켜 고용률을 높이는,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 그냥 흘려듣기엔 설득력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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