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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남자아이들만 레고를 좋아한다?"

고정관념 탈피,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가치 창출

[취재파일] "남자아이들만 레고를 좋아한다?"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선물 걱정이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담아 몇 개 준비하다보면 경제적인 부담도 꽤 되고, 무엇보다 뭘 사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현금이 가장 선호되는 선물이라고들 하는데,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장난감' 이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은 어린이 날 마케팅이 한창이다. 인기 제품을 할인해 주기도 하고, 각종 이벤트를 열어 아이들과 부모들의 눈길을 끌려고 분주하다. 장난감이 상당히 종류가 많은 듯 보이지만, 사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주말마다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를 반복적으로 가다보면 별로 다양하지 않다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남자아이들에게 단연 최고의 인기인 '레고'가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들, TV나 영화로 인기 있는 캐릭터 관련 상품, 전통적인 인기상품 소꿉놀이 장난감 그 정도로 정리된다. 각 종류별로 한 개씩 사주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사주고 싶은 게 없다. 그래서 대형마트에 가면 엄마와 아이가 "이거 너 집에 몇 개씩 있잖아" "비슷한 거 사줬잖아" 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올 들어 '레고' 장난감 코너를 갔다가 색다른 제품이 등장한 것을 발견했다. 여자아이들 용으로 알록달록 색깔의 아기자기한 인형을 레고로 만든 것이다.

사실 레고는 매번 변신의 변신을 거듭해왔다. 80년 전통의 덴마크 장난감 브랜드라니 얼마나 오랜 기간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과거에는 벌크 형태로 여러 가지 형태의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모양의 블록이 담긴 박스 형태였다. 그런데 한번 사서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드는 게 아이들 창의력엔 좋을 수 있지만 업체 수익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터. 캐릭터별, 테마별 상품이 속속 등장한 이유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배,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테마가 나왔고, 이후엔 영화나 만화시리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스타워즈, 해리포터에 동양적인 소재인 닌자까지 모두 레고 제품으로 등장하면서 아이들은 환호했고 부모들의 지갑은 얇아졌다. 

캐릭터별로 몇 개씩 레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환이 되지 않는 건 자기 생각대로 뭔가를 만들어본다는 레고라는 장난감 본연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레고라는 브랜드는 수십 년째 장난감 브랜드 인지도 1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한 가지 바뀌지 않았던 것은 블록을 조립한다는 특성상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인식이다. 남자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차, 무기, 건물 등의 테마가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겠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감행했다. '레고=남자 장난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겠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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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가 여자아이 브랜드 '레고 프렌즈'를 탄생시킨 배경을 들어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여자아이들의 놀이방법을 4년간 연구해 내놓은 제품이라는데, 처음 등장하자마자 첫 달 3개월 만에 목표 수량을 다 팔아 비행기로 제품을 급히 다시 공수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레고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000명의 엄마와 딸을 연구했다고 한다. 6~9세 여자 아이들은 동성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낀다는 사실, 또 일상을 반영한 역할 놀이를 좋아한다는 것 등이 감지됐다. 남자아이들은 일상 속 역할놀이 보다 가상의 전쟁이나 상상 속 이야기에서 놀이를 이끌어가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중시하는 여자아이 특성상 파스텔 색깔로 눈길을 잡았고, 립스틱에 조리도구까지 작은 듯 보이지만 없는 게 없도록 그렇게 디테일한 재미요소를 추가했다.

'레고 프렌즈'를 광고해주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다만 80년 동안 굳건히 가장 경쟁력 있는 장난감 브랜드, 가만히 있어도 그 지위에 크게 손상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이 벌인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게 느껴져서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들이라도 항상 성장성이 정체되는 국면을 맞이한다. 경쟁이 격화돼서일 수도 있고, 원가 상승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져서일 수도 있고, 소비자 변심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이런 '정체기'를 극복할 동력이 필수다.

우리 장난감 업체를 보자. 상대적으로 영세한 편이다. 주로 인기 캐릭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규모가 작다보니 기술개발 등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 뽀로로, 로보카 폴리, 타요(요새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들) 등 캐릭터가 뜨면 관련된 인형, 로봇, 그림이 새겨진 각종 학용품이 줄줄이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다. 획기적인,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돼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사주고 싶은 그런 장난감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인 연구개발없이, 캐릭터 사이클을 따라 단기적으로 돌아가는 구조 때문이다.

업계의 변은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미 외국산 장난감이 많이 장악하고 있어서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자본 규모가 작아 대규모 투자가 어렵고, 저출산 현상으로 아이들은 줄어들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을 얘기한다. 물론 맞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 대한 투자가 늘어 장난감 시장 전체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언제까지 장난감 시장이 TV나 영화 캐릭터와 사이클을 같이 하는 패턴이 반복돼야 할까.

그나마 다행인건 뽀로로를 비롯해 요새 인기가 있는 로보카폴리, 또봇, 코코몽, 타요 등이 국산 만화 캐릭터라는 점이다. 곰돌이 푸우, 미키마우스 등 외국 만화가 장악하다시피 했던 과거, 우리 캐릭터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지와 꾸준한 투자가 없었으면 달성되기 어려웠을 결과다. 뽀로로 돌풍 이후 최근 수년간 우수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와 이제 외국으로 수출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국산 장난감의 갈길이 뭘까 생각을 해봤다. 물론 장난감 종류가 많아질수록 가뜩이나 물가고에 시달리는 부모님들 주머니 사정 빠듯해지겠지만, 이왕 돈을 쓸 거 그럴듯한 경쟁력을 인정받는 국산제품에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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