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한쪽에선 억누르고, 한쪽에선 장려하고…

부처간 엇박자 정책의 전형 '아이사랑카드'

'아이사랑카드'는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보육료 지원의 결제 수단이다.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에 지급하는 보육료를 부모에게 직접 주기 위해 고안한 카드인데, 신청자가 너무 한꺼번에 몰리면서 카드 발급이 지연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카드가 금융권의 신용카드 발급 경쟁을 다시금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가계빚을 관리하기 위해 신용카드 발급을 위한 소득 요건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카드 발급 억제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부처에서는 카드를 발급하도록 부추기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선 카드 발급 어렵게 하겠다 하고, 다른 한쪽에선 발급받으라고 하는 '엇박자정책'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할때 아이사랑 카드 누적 발급 200만 건 가운데 43만 건이 올해 두달 사이에 발급됐다. 만 0~5세 아동에 대한 정부의 보육료 지원이 늘었는데, 보육료 지원을 받으려면 이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카드사도 지난해엔 신한카드 한 개였지만 올해부터는 KB국민카드, 하나SK카드, 우리은행 이렇게 3개로 늘어났다.

문제는 아이사랑 카드를 신용카드로 발급받을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체크카드, 신용카드, 전용카드 3가지 형태 가운데 선택할 수가 있는데, 올들어 신규발급된 43만 건 가운데 70% 정도가 신용카드를 수단으로 선택했다.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을 억제하려는 금융당국의 취지를 읽었다면 소득 내 지출이라는 체크카드로 제한할 법도 한데, 그런 고민은 없었다. 현재 금융당국은 체크카드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소득공제 혜택을 더 늘려주는 방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카드사들에게 각종 포인트 혜택을 줌에 있어서 신용카드와 심하게 차별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이런 틈새 시장을 그냥 두고볼 리 없다. 가뜩이나 신규 카드 발급에 제약을 받으면서 어떻게 영업을 확대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이사랑카드를 발급받으려는 주부들은 놓칠 수 없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카드사들간 발급 경쟁이 벌어지면서 불법 영업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주부들이 육아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에는 아이사랑 카드를 만들고 5만 원을 받았다는 사례 등이 심심찮게 올라와있다. 체크카드를 만들려고 했는데, 사은품이나 현금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신용카드를 만들었다는 주부들도 많다. 하지만 아이사랑 카드를 만들 때 연회비의10%를 초과하는 금품을 주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주부들은 기존에 있는 카드에 보육료 지원기능을 추가시키거나, 아니면 보육료만 결제되는 전용카드를 만들거나 하면 될 것인데, 왜 또 한장 지갑에 신용카드를 늘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 많다. 신용카드가 생기면 아무래도 외상거래를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니 그것도 탐탁치 않은데, 너도나도 카드발급을 권하니 참 이상하다는 얘기다.

0~2세 무상보육 확대는 궁극적으로 그렇게 가야하는 방향은 맞지만 준비가 너무 미흡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시행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벌써 줄을 잇고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선심성 정책을 쏟아놓으면서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뭔지, 어떤 효과 또는 문제점이 발생할지 고민이 충분치 못했다. 필요에 의한 보육수요가 아니라 '안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에서 어린이집 대기자가 폭주했고,  공립 어린이집은 부족한 상황에서 민간 어린이집들은 20만원 보육비 지원만큼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주부들은 정부가 보육료를 지원해주는 것이 물론 고맙지만 결국 어린이집 보육료만 올려놓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아이사랑 카드 발급 관련 문제도 여러가지 생길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한데서 온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현재 가계빚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래서 어떤 대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카드 발급회사를 여러곳으로 확대하면 얼마나 경쟁이 과열될지, 관련 부처간에 한 차례만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더라면 해법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육료 지원을 해주겠다는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이라는 미처 예상치 못한 쪽에서 부작용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현재 정부 정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방향이 뭔지, 큰 그림이 뭔지 들여다보지 못하고, 경제부처는 경제대로, 사회부처는 사회대로 제각기 자기것만 보는데서 나온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돈은 돈대로 쓰고 나중에 원망을 듣는 상황에 처해도 별 할 말이 없는 이유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