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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치 9단' 박희태의 몰락

국민 양해 구할 결정적 기회 잇따라 놓쳐

[취재파일] '정치 9단' 박희태의 몰락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정치 9단'으로 불립니다. 1988년 13대 국회부터 내리 6선을 하면서(18대는 재보선), 한국 현대 정치를 현장에서 지킨 원로 정치인에 대한 일종의 예우적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 9단'이라는 표현은 박 의장이 민정당 대변인 시절 스스로 창안해 낸 조어였습니다. 1989년 5공 청산 문제를 풀기 위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야 3당 총재가 회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어떤 조건으로 타협이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박 의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과 세 분 총재는 모두 '정치 9단'으로서 입신의 경지에 있는 만큼 5공 청산의 묘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정치 9단' 탄생의 배경입니다. 당시 청와대가 박 의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은 9단이 아니라 한 단 더 올려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의했다는 내용은 박 의장의 저서 '대변인'에도 자세히 소개가 돼 있습니다.

처음 말을 만들 때는 1노3김을 지칭한 표현이었지만, 박 의장은 그 스스로 당 대표와 국회의장까지 승승장구하며 '정치 9단'이 됐습니다.

그런 박 의장이 국회의장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하고 곧 검찰 조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선 고승덕 의원의 말 한 마디가 정치권에 돈 봉투 폭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동안 난항을 겪던 돈봉투 수사는 박 의장의 비서였던 고명진 씨가 "돈 봉투 돌린 사실을 김효재 당시 캠프 상황실장에게 보고했다"고 폭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결국 박 의장도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찰 출입 기자로서 박희태 의장의 처신을 보면 '정치 9단'이라는 수식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에 허심탄회한 양해를 구하고 진심 어린 사과로 그나마 불명예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기 때문입니다. 박 의장은 고 의원 폭로 이후 몇 차례 언론에 나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폭로 직후 해외 순방차 출국하던 1월 8일, 출국을 마치고 귀국하던 1월 18일, 의장직 사퇴를 발표하던 2월 9일이 바로 그렇습니다.

고 의원 폭로 직후인 1월 8일은 경황도 없고 사태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가타부타 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전 언론이 인천공항에서 생중계까지 하며 해명을 기다렸던 1월 18일 귀국 기자회견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긴 했지만 "모르는 일이다 외에 드릴 말씀이 없다"는 의장의 말에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월 9일 국회의장실 대변인을 통한 사퇴 발표 대독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고명진 씨가 돈봉투 사건에 김효재 수석이 연루된 사실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자, 박 의장은 당일 아침 결국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TV에선 박 의장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국민 입장에선 생소하기만 한 대변인이 나와서 사죄한들 누가 진심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결국 박 의장은 2월 13일 의장직 사퇴서를 제출하면서야 언론 앞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론은 싸늘해진 상태였습니다.

돈봉투 수사가 한창이던 1월 중순 검찰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차피 전당대회 돈봉투는 여야 막론하고 관행적인 것 아니냐. 교통비, 식대 차원의 실비 정산은 늘 있어왔던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박 의장이 먼저 국민 앞에 나서 소상히 설명하면서 사죄하고, 이런 저런 관행이 있었는데 이걸 깨나가겠다고 약속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이죠.

이미 때는 늦었고, 검찰 수사는 박 의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박 의장은 구체적인 돈봉투 전달 상황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처벌이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처벌은 면하더라도 '정치 9단'의 명예는 땅에 쳐박혔습니다. 어쩌면 박 의장이 수차례 기회를 미룬 것이 어쩌면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정치적 계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 게 분명해 보입니다.

누군가는 "우리 사회의 원로가 또 한 명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모두가 존경하고 공경하는 원로가 줄어든 시대. 이번 돈봉투 사건을 끝으로 '원로의 추락'은 더 이상 없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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