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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화에 특혜" vs 거래소 "잘못없다"

한화 상장폐지 심사대상 제외를 둘러싼 논란..진짜 문제는?

[취재파일] "한화에 특혜" vs 거래소 "잘못없다"
증권가에 한화 후폭풍이 거세다. 거래소가 지난 3일 저녁 한화 주식 거래를  6일부터 정지한다고 공시했다가 일요일인 긴급회의를 열어 이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주말 휴일 중에 공시번복 조치가 취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잇따라 단체행동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고 소액주주들은 증권 관련 사이트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누가 횡령배임을 두려워하고 누가 분식회계를 두려워할 것인가"라며 분명히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는 글 등 다수의 의견들이 증권 관련 사이트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영진 배임 횡령으로 거래정지를 거쳐 상장 폐지된 코스닥 종목 주주들은 더욱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배임 횡령 사실 인지했을 때는 이미 거래정지가 됐고, 그래서 상장폐지가 된 후 주식이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사태를 그냥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한화를 둘러싼 거래소의 신속(?)한 조치는 심각히 편파적이라는 주장이다.

거래소의 이번 조치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거래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부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도 있다.

먼저 거래소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루 만에 말을 바꾼 부분이다. 거래소는 한화가 재빠르게 제출한 반성문, 그러니까 경영투명성 개선방안에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길래 감명이 깊었느냐 물었다. 특수 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승인을 담당하는 의사결정기구 위원장을 사외이사에서 선임하고 준법지원인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라고 했다. 좋은 방법들인데,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들이었다. 거래소는 이것만 가지고 판단한  것은 아니고  최악의 경우를 산정해본다고 했다. 즉 검찰 구형대로 형이 확정됐을 경우 기업 존립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여부다. 한화의 경우엔 890억 원이 모두 확정된다고 해도 한화라는 기업의 재무건전성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충분히 근거를 갖춘 결정이라는 항변이었다.

그럼 다른 기업들은 2주나 걸렸다는 판단 기간이 어떻게 하루만에, 그것도 유례없이 일요일에 회의를 열어서 결정했냐는 부분에 대해서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화가 발 빠르게 대응했다. 10대 기업 중 하나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좀 더 긴급하게 대처한 게 잘못된 일인가? 한화가 제출한 재발방지책, 재무건전성 여부를 판단하는 긴급회의를 열어서 결론이 났는데, 그럼 2주 동안 기다리는 게 맞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소기업들과 대기업 사이엔 우리가 취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차이가 있다. 즉 한화는 대기업이라 이미 우리가 재무안정성을 검증할 사전지식, 자료가 많지만 중소기업들은 그걸 알기까지 정보 취득기간이 더 길다. 기업별로 시간이 다르게 걸리는 게  맞지 일률적으로 대기업도 2주, 중소기업도 2주라면 그런 오히려 빠른 대처를 한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라고 말했다.

법으로 정해지지도 않은 다른 기업에 소요됐다는 '2주'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서 너무 빠르다 비난을 내놓는 것은 한번쯤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장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할 때 발 빠른 대응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중소기업들에 대해서 일요일까지 긴급회의를 열어서 결정을 앞당기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게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모든 기업에 대해 결정 기간을 앞당겨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어쨌든 여러 정황에서 볼 때 한화에 대해 절차상에 상당한 배려를 해준 흔적이 역력한 건 사실이다. 최근 1년간 유사한 이유로 거래정지나 상장폐지를 당한 다른 유가증권시장, 그리고 코스닥 기업들과는 판이하게 절차가 다르게 운영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래소가 감싸도 시장은 냉정하다. 오늘(6일) 한화 계열사 주가는 줄줄이 하락했다. 이미 김승연 회장 재판이 1년 전 일이라서 주가에 반영이 다 돼서 주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증권사들 전망이 있었지만 (주)한화는 4% 넘게 급락했고, 한화증권 한화케미칼 등도 약세를 보였다. '오너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불거졌던 한화이기에 좀 익숙해질 때도 됐으려니 하면서도 10대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상장폐지 위기에까지 몰린 충격파는 적지 않았다.

이미 조치는 취해졌고, 거래도 정상적으로 됐다. 이제는 갑론을박 누가 맞다 누가 그르다 논쟁만 반복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없다. 이번 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거래소가 이번 일에 대해 비판을 받는 부분 중의 하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대주주나 경영진의 탐욕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배임이나 횡령에 대해 한층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해놓고 그걸 스스로 뒤집은 부분에 대해서 일관성이 결여됐다고 보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검찰 확정판결이 아닌 기소단계에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릴 수 있도록 강화한 규정은 사실 규정 내부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즉 확정 판결이 아닌 혐의의 액수로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에 추후 최종 판결이 나왔을때 시비가 붙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종을 울리려고 했다는 ‘좋은 취지’가 있었다고 해서, 이런 부작용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양해를 받기 어렵다.

거래소 매매 정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비상장사에 대한 주식 평가액에 대해 별다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검찰이 기소할 때 액수가 좀 더 부풀려질 수도 있고, 그 액수 중에 일부만 확정판결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검찰은 한화의 배임금액을 890억원이라고 혐의를 뒀기 때문에 자기자본 비율의 2.5%가 넘게 된 것이다. 검찰은 한화S&C의 주식가치를 주당 23만원정도로 산정한 건데, 업계에선 이 평가액이 실제 가치보다 좀 높다는 의견도 있다. 만일 이 액수가 달라지면 배임액이 자본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낮아지기 때문에 이번 논란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비상장사의 주식 평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 이번 이슈를 만든 중요한 한 원인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또 ‘거래 정지 제도 자체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인데 반대로 거래정지 조치 취소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거래소에 대해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 이 역시 어떤 경우엔 거래정지 조치 취소가 투자자를 보호하는 건지 좀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정리해보면 거래소는 배임 횡령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로 제도를 고쳐놓고도 설마 배임액이 자기자본의 2.5%에 달하는 큰 기업이 거기에 해당할까 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자 상당히 당황했고, 참고로 삼을 만한 선례가 없다보니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해 더 큰 혼선이 빚어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거래소가 정말로 배임횡령에 대해 엄벌에 처할 의지가 있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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