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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초등학생 새해 목표가 '다이어트'인 사회

[취재파일] 초등학생 새해 목표가 '다이어트'인 사회
오늘 쓰려고 하는 취재파일 주제는 경제적인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함께 생각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올린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새해 목표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것은 흔히 학부모들이 바라는 '공부 열심히 하기'도 아니고 '친구 만들기'나 '피아노배우기' 처럼 아이 같은 답도 아니었다.  1위에 오른 답은 다름 아닌 '다이어트' 였다. 미용에 관심이 많은 20대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아니고, 건강을 살피는 중년여성에게 물은 게 아니라 초등학생에게 질문을 던진 것인데, 새해 목표가 살을 빼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아마 학생들은 '요새 초등학생이 얼마나 성숙한데 뭘 그걸 보고 놀라냐'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인 추세가 그렇게 간다고 그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마치 청년들이 가장 안정적인 공무원을 최대 선호 직종으로 꼽는 것이 취업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이지만, 젊은이의 도전정신이 사라지는 큰 문제점이 잠복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이돌 가수의 연령이 날로 낮아지고, 미디어의 발달로 외모지상주의가 더해지면 더해지지 덜하진 않을 것이란 것 짐작이 간다. 실제 대중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외모가 뛰어날 경우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과 평범한 여성을 아르바이트 직에 응모하게 한 TV프로그램 실험에서도 외모가 뛰어난 여성에게 너무나도 호의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봐도 현실은 그렇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또 그걸 지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외모가 멋있고 예쁠수록 대접받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초등학생이 너무 일찍 알아버린다는 현실이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이어트를 하고, 중학생이 되면 교복을 미니스커트처럼 올려 당겨 입고, BB크림에 화장하는 건 일상적이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성형수술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 그런 소녀들의 심리를 부추기는 각종 성형외과의 상술이 판치는 사회,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외모지상주의'까지는 '인간들은 본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철학적 명제를 끄집어내서 인정한다 치자. 이제는 공공연히 '외모차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못생긴 것은 곧 나쁜 것이고 불이익을 받아도 괜찮은 결함'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학생들, 대중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

여기에 미디어, 언론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 최근 등장한 한 숙취 음료 광고를 보면 술이 취한 상태에서 미인으로 보였던 여자가 자사의 술깨는 음료를 마시니 뚱뚱하고 덜 예쁜 여자로 바뀌면서 남자들이 기겁을 하는 설정으로 그려진다. '뭐 광고가 그렇지..'하고 보다가도 꼭 자사 제품을 자랑하는 방식이 이런 것밖에 없을까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술 깼을 때 나오는 여성 연예인은 나름대로 건강하고 개성 있는 얼굴의 소유자인데, 이 사람은 앞서 등장한 여성보다 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에게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못 본 사이 후덕해졌네!' '후덕은 옛말, 놀라운 슬림몸매' '후덕해진 최근모습 '인어자태 어디로?' '쉬는 동안 살쪘나?' 최근 인터넷 연예뉴스에서 발췌한 제목들이다.  도대체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예인 사진을 놓고 이런 제목으로 낚시를 하려는지 장난질을 치고 있다. 설령 약간 살이 쪘다면 어떤가? 사람이 쉬면서 여유로워질 수도 있고, 운동을 약간 덜했을 수도 있다. 살이 약간 찌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접근법은 언제부터 인터넷 연예뉴스를 지배하는 가치가 돼버렸을까?

인터넷상에서 오래전부터 떠돌고 있는 외모를 등급으로 나눈 한 농담 섞인 글을 예로 들어보겠다.

F등급- 한 달에 한두 번씩 자살을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의 심각한 얼굴. 진실한 사랑은 죽어도 할 수 없음. 희망을 가지기 힘든 얼굴.

E등급-개그맨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얼굴. 자기발전을 위한 노력을 해야만 옷 같은 건 아무리 잘 입어봐야 소용없음.

D등급-비싸고 멋진 옷을 입어도 추잡해 보임

C등급-아무리 꾸며도 평범해 보이는 수준. 명품이라도 조금 쳐 바르면 부티는 날 수 있음.


웃자고 쓴 글일수도 있지만 심하게 비하적인 표현이 많아 웃으면서도 기분이 상쾌하진 않다는 반응들이 많다. 역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외모차별주의를 드러내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아름다워야, 잘생기고 멋져야 더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더 인지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뜻은 아니다. 단순히 연예인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그렇고, 심지어 일반인들도 '얼짱'이란 이름으로 외모로 주목받곤 한다. 외형의 시각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그걸 미디어가 뒷받침해주는 사회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외모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스스로 자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도 일정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인 미'라는 진리가 이제는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이 위안을 삼을 때나 하는 말이라고 얘기하는 학생들을 보니, 이 추세는 역행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른 모델들만 선호하면서 모델들이 사망하는 사례까지 나오자 일부 유럽국가들이 뼈만남은 모델들을 쓰지 않기로 했던 것이 일정의 변화를 이끌어 냈듯이, 아이들이 좀더 건강한 가치를, 의미있는 목표를  지향하고 자랄 수 있도록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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