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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고구마? 금고구마!

군고구마가 없습니다

[취재파일] 군고구마? 금고구마!
얼마 전, 요즘 길거리에 군고구마 장수가 없다는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 맞아, 요즘 군고구마 못본 지 오래 됐어' 하며 공감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뉴스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고구마 자체가 안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구마의 인기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고구마 인기는 참 좋은데 유독 길거리 군고구마만 안 팔린다는 겁니다.

고구마의 과거에 대해 잠시 얘기를 해보면요, 60~70년대, 참 가난했던 당시의 '대한 뉴스'를 보면 '쌀을 아끼자'며 쌀 대신 고구마를 먹을 것을 적극 권장하는 보도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고구마가 별 인기가 없었단 뜻이죠.

그러던 것이 최근엔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가지 음식만 집중적으로 먹으며 살빼는 다이어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고기만 먹는 황제 다이어트, 포도만 먹는 포도 다이어트, 감자만 먹는 감자 다이어트 등 유행에 유행을 거쳐 최근 고구마까지 온 겁니다. 자, 고구마가 다이어트를 만나는 순간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게 됐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출근할 때 도시락 대용으로 고구마를 싸갖고 다니고요, 울끈불끈 몸짱들, 인기많은 아이돌들은 티비에 나와 너나 할 것 없이 고구마를 먹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고구마가 순식간에 젊고 트렌디한 인기 음식으로 떠오르면서 집에서 고구마를 직접 구워먹는 사람도 부쩍 늘었습니다. 아예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에선 고구마 굽기 전용 냄비를 인기상품으로 팔고 있고요, 젊은층이 자주 찾는 대형 커피숍에서도 별미 메뉴로 군고구마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마에 이렇게 열광하는데 왜 유독 군고구마 장수만 눈물을 흘리냐고요? 취재하면서 저도 참 이상했습니다. 사실 집에서 아무리 맛있게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고 해도 하얀 연기 내뿜으며 드럼통 안에서 익어가는 길거리 군고구마 보다 맛있진 않는데 말이죠. 당연히 고구마 좋아하는 분 많아지면 군고구마도 잘 팔려야 하는데, 이게 그렇질 않더라는 거죠.

많은 사람을 인터뷰 해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거리 군고구마를 '싼 맛에 먹는' 군것질 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60~70년대 못 살던 시절 밥대신 먹었던 고구마 간식이 군고구마인데, 그걸 비싸게 먹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단 겁니다.

얼마나 비싸길래 이러냐고요?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군고구마가 한 개에 천 원입니다. 그에 반해 커피숍에선 달걀 크기 정도 되는 작은 군고구마를 한 개에 천오백 원 정도에 팔더군요. 커피숍 고구마에 비하면 길거리 군고구마는 엄청 싼 것이죠.

그럼에도 길거리 군고구마하면 2개 사면 한 개 껴 주고, 다섯 개 사면 두 개 껴주고… 그렇게 해서 천 원, 2천 원 받던 그런 군것질 거리란 인식이 강하다 보니 한 개에 천 원 주고는 절대 안 사먹는다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요즘 많은 자영업자가 대기업에 밀려서 사라져 가는 것을 봅니다. 대학가 토론 장이던 작은 커피숍들도, 2~3천 원 주고 밥 한 그릇 먹었던 어수선한 식당가도, 매일 같은 시간에 빵이 나오던 동네 빵집도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엔 프랜차이저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 대기업 제과점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자영업자인 군고구마 장수가 이토록 거센 자본의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 이런 것을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 우리 시대가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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