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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다의 로또, 숨겨진 슬픈 사연

[취재파일] 바다의 로또, 숨겨진 슬픈 사연

"술00",
"00등 같은 ...",
"00싸움에 ..."

이미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빈 곳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가 무엇인지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느린 분들을 위해 힌트 하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칭찬은 00도 춤추게 ..."

네, 짐작하신대로 오늘은 고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마지막 힌트는 미국에서, 그 것도 최근에야 들어온 표현이지만 앞의 세 개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사용해오던 표현이죠? 고래는 그만큼 우리와 오랫동안 같이 해왔습니다. '고래싸움'이나 '술고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와 같이 고래는 주로 “아주 큰 것의 상징적 의미”로 쓰여 왔지만 최근에는 바닷가 어민들에게 '고래 = 로또 복권'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지난 12월부터 한 달 남짓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30여 마리의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이를 혼획(混獲)이라고 부르는데 한자 뜻 그대로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함께 걸려 죽었다는 뜻입니다. 고래는 지난 86년부터 상업 포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혼획'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 30여 마리 가운데 20여 마리는 돌고래 종류였지만 10마리는 밍크고래였습니다. 한 마리 길이가 4-5미터, 무게는 1-2톤 씩 나가는 아주 커다란 밍크고래 말입니다.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는 고의로 포획한 흔적이 없으면 혼획이 인정돼 경매를 통해서 팔려 나가는데 돌고래가 마리당 채 100만 원도 안 나가는 반면에 밍크고래는 2천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래는 포획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반해 고래 고기 수요는 아주 많기 때문에 이렇게 혼획된 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고래고기의 공급수단이 됩니다.

새벽부터 거친 바다로 나간 어민 입장에서 보면, 힘들게 조업해도 잡히는 물고기는 계속 줄고 있고, 반면 기름값은 해마다 올라 매일매일 조업경비 빼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물에 걸려 죽어있는 밍크고래를 발견한다면, 그야말로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지 않을까요? 어떤 어민들은 '1년 벌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입니다. 죽은 고래에게는 안 됐지만 어민들에게는 굴러들어온 '복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남한) 바닷가에서 좌초(해안가로 떠밀려와 죽어 있는)되거나 혼획된 밍크고래는 연간 평균 90마리 수준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를 보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1년 동안 가장 많은 것은 2001년 160마리였지만, 이를 제외하면 최소 69마리(2004년)에서 107마리(2005년) 사이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대다수는 겨울철인 12월과 1월, 봄철인 4월-6월 사이에 발생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이 시기가 밍크고래의 회유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주변의 밍크고래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회유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은 주로 러시아 앞쪽인 오호츠크해에서 보내다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12월과 1월 주로 우리나라 동해안을 지나게 됩니다. 이 때 동해안에 쳐놓은 그물에 해마다 많은 밍크고래가 희생됩니다. 또 따뜻한 남중국해 근처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동해안을 거쳐 북상하게 되는데 이 때 역시 밍크고래가 그물에 많이 걸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주로 나이 어린 개체들의 희생이 많습니다. 혼획되는 고래는 대부분 길이 4미터 안팎의 미성숙 개체들인데, 나이는 4-5세 미만이 많습니다. 밍크고래가 보통 70년에서 많게는 90년 가까이 산다고 알려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어린 개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밍크고래는 어미로부터 젖을 뗀 뒤 이동할 때는 보통 단독으로 움직이는데 경험 많은 어른 고래와 달리 새끼들은 유영능력이나 방향을 잡는 능력, 사냥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연안 가까이 붙어서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물에 걸릴 확률도 높고, 또 스스로 그물에 걸린 먹잇감을 노리고 그물로 잘못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바다에는 고래가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고래연구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아주 늦게 시작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천 년대 들어와서야 국가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는데 10년 동안 조사한 연구결과를 지난해 11월에 발표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봄철인 5월 우리나라 주변에는 7만 마리 가까운 고래가 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구요? 그러나 아쉽게도 6만 8천여 마리는 돌고래 종류고, 밍크고래는 1,600마리에 불과합니다. 참돌고래와 상괭이가 전체의 95%를 차지하고 나머지 5%를 낫돌고래와 밍크고래, 남방큰돌고래가 구성하고 있습니다. 구간별로 표본 조사법과 표식-재포법 (Mark recapture Method)을 활용한 추정치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 수치만큼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고래 종류별 비율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래류는 전세계적으로 대략 80여 종이 있고, 이 가운데 우리나라 바다에는 돌고래류 13종을 포함해 약 35종의 고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돌고래류와 밍크고래를 제외한 나머지 종류의 고래에 대해서는 개체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렇다 할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고래연구소에서 지난 10년 동안 조사선을 타고 우리나라 주변 해역을 누비고 다녔는데 관측된 고래 종류는 돌고래를 제외하면 밍크고래와 범고래, 향고래가 고작이었습니다. 또 그나마 조사가 진행된 밍크고래 역시 암수 성비와 연령별 분포가 어떠한지, 그래서 해마다 혼획되는 개체수가 전체 밍크고래 개체수 증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동해바다는 '고래의 바다'인 경해(鯨海)라고 불렸습니다. 고래가 많았다는 뜻이죠. 그러나 서구열강과 일제의 남획으로 우리바다에서 대왕고래와 참고래 같은 대형고래류는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고래류 가운데 중간 정도 크기에 속하는 밍크고래만 남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고래 가운데 이름에 유일하게 '코리아'가 들어가는 귀신고래는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우리 바다의 귀신고래는 현상금까지 걸렸습니다. 사진을 찍기만 해도 500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했지만 종적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고래는 원래부터 우리가 한반도에 살기 이전부터 동해 바다의 주인이었고, 이후 근현대에 접어들며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와 운명까지 함께 해왔습니다. 어민들에게 잡히는 '바다의 로또복권' 밍크고래가 단순히 신기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 가야할 대상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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