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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런 전망은 나도 하겠다"

증권사 '헛다리' '고무줄' 전망…투자자 시선 '싸늘'

[취재파일] "그런 전망은 나도 하겠다"

매년 이맘 때면 증권사들이 내년 주가 전망치를 내놓는 시즌이다. 올해 최고 변동성이 큰 장세를 겪은 증권사들, 내년 역시 상당히 불투명하게 내다봤다. 15개 증권사 전망치가 1692에서 2285 사이, 상 하단 차이가 최고 880포인트에 달한다. 여전히 유럽 재정위기 등 해외 악재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상하단 전망치 간격을 최대한 늘려 잡는 분위기다.

증권사들은 다양한 통계 자료와 경험 등을 근거로 모델도 돌리고 추론도 섞고 전망치를 내놓느라 고생을 하고 있겠지만, 실상을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증권사들이 내놓은 올해 전망치가 대표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많았지만, 유동성 장세가 이어진 데 힘을 받아 너나없이 강세장을 외쳤다. 17개 증권사들이 예측한 주가 평균치는 1818~2387. 실제 올해 수치가 1644~2231이었으니 아래로는 164, 위로는 156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올해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했던 경험을 근거로 '신흥국 주도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선진국 경기도 회복세를 탄다'는 증권사들의 1년 전 보고서를 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다. 재정위기의 근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미봉책에 근근이 버티던 유럽 쪽 변수를 심각하게 본 곳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가장 근접하게 맞힌 증권사는 미국이 상당히 지지부진 할 것이라며 그 변수를 네거티브하게 책정해서 보수적인 수치가 나왔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워낙 시장 변동성이 커서 힘들다. 연도별 뿐 아니라 월별 지수 예측도 큰 의미가 없을 정도다. 우리가 점쟁이도 아니고 악재를 예상하긴 힘든 것 아니냐"며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들의 고충에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워낙 대외 악재가 많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해받기가 어려운 것이 그동안 증권사들의 전망이 별로 맞은 적이 없다는 게 투자자들의 기억에 워낙 뚜렷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9개 증권사가 내놓은 코스피지수 전망치 중 다음 해 실제 코스피지수 상하단과 50포인트 이내 오차를 보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외 악재 탓하지만...거시적 전망 역량 키우는 일 시급

일단 가능한 악재와 호재를 시나리오별로 반영하다보니 증권사들은 상하단 범위를 날로 크게 잡고 있다. 또 변동성이 큰 우리 장의 특성상 범위를 넓게 잡아서 가급적 예상치 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는 게 솔직한 토로다. 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지수가 2000인데 상하단 범위가 900인 전망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전망이라지만 투자 정보로서는 가치가 별로 없다는 회의감은 이미 시장에 퍼진 지 오래다.

또 주식이 활황일수록 증권사 수익도 커지니까 보수적, 부정적 장세에 무게를 두기 어렵다는 한계점도 있다. 결국 악재는 인식하면서도 잘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니 상한선은 높아지고, 좀 더 낙관적으로 보도록 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수 전망은 어떻게 나올까. 기본적으로는 국내 증권사 대부부은 개별 기업들의 연간 실적을 전망하고, 현재 주가가 실적에 비해 덜 평가돼 있는지 더 평가돼 있는지 말해주는 주가수익비율(PER) 등의 근거를 감안해서 전망치를 구한다. 여기에다가 영향을 미치는 거시변수를 고려해, 성장률 부침에 따른 모델을 돌려 각 증권사별, 시나리오별 전망치나 나오고 가장 낮은 것, 높은 것 골라 전망범위가 산출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거시지표는 상대적으로 덜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적 장세일 때는 상당히 전망이 잘 들어맞지만 요즘처럼 전 세계 경기를 뒤흔드는 게 유럽, 미국, 중국 악재라면 상황이 다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올해 같은 경우는 유럽 변수가 해외증시를 이끌고 우리 증시는 그에 동조화되는 현상이 뚜렷한 전형적인 매크로(거시) 장세여서 내부적으로도 거시경제 분석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제 신뢰가 떨어지는 증권사의 지수전망을 얼마나 믿어야 하나, 이를 근거로 투자 여부 등을 결정해도 되느냐 의심을 짙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입장에선 그마나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증권사 리서치 자료만한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결국은 증권사 리서치 자료를 너무 과신해서 절대적인 투자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참고용'으로 활용하되 여러 곳의 보고서를 함께 비교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 워낙 시장이 불투명하다보니 장기보고서보다는 단기보고서 위주로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외국인 투자 비중 높아 태생적 한계도.. 일단 참고용, 단기 위주로 봐야

내년에도 불투명한 장세가 예상된다. 증권사들은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유럽 위기와 미국 경기 회복, 중국 긴축, 선거 이슈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김정일 사망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졌다. 한반도에서 생길 수 있는 최대로 많은 외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 예상된다. 특히 북한의 후계 체제가 확고하지 않아 김일성 사망 때와는 상황이 다른 중장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금융시장을 둘러싼 변수들이 시장이 가장 싫어한다는 '대외 불확실성'으로 채워지는 양상이다. 증권사들이 전망이란 것을 내놓기에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지는 한해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축적된 노하우와 신중한 통찰력을 한판에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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