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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난파선' 한나라당에서

[취재파일] '난파선' 한나라당에서
야근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30분만 있으면 12월 12일. 월요일입니다. 지난주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의 재창당 요구에서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의 사퇴, 그리고 홍준표 대표의 사퇴, 그 이후 한나라당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한나라당은 '난파선'입니다.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구조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남아 있는 선원들이 있습니다. 오늘 '여의도를 떠나겠다'고 한 홍정욱 의원은 배에서 뛰어 내린 선원입니다. '여당이된 한나라당'이란 배를 타면 더 멀리 항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개 신입 선원으로 4년을 버텨 보니, 선원 일이라는 게 그렇지요, 등급 높은 선배 항해사들에게 밀려, 갑판만 닦다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배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다른 '수도권 쇄신파 초선' 선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뛰어내리는 홍정욱이 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나는 뱃사람이 되고 싶어', '큰 배의 선장이 되고 싶어.. 그런데 아직은 이 배 뿐이야, 헤엄쳐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배는 이 배 뿐이야' 라며 슬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나라당호의 선장실은 비어 있습니다. 이제 곧 박근혜 선장이 온다고 합니다. 소문은 무성합니다. 귀엣말로 전해져 옵니다. '선장이 나온대! 선장이 나온대!' '기다려 보자!' '그래 기다려 보자!'

박근혜는 전 선장입니다. 한 때 이미, 이 배를 몰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덕에 죽다 살았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만. 선원들은 또 쑥덕입니다.

   


"그건 전설이야, 지금은 시대가 변했어"
"아냐, 아직도 그 분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어"
"그런데 말야, 그 분이 선장일 때 말이야, 봐주고 그런 거 없었어, 니들 다 조심해야 해"
"그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더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건가?"
"그래도 어쩌겠어, 니가 참아. 일단 기우는 배가 바로 서야 우리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어?"
"아냐, 옛날 그 방식은 이제 안 된다니까!!"
"아,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지, 선원들은 끼리끼리 모여 얘기를 합니다. 싸우기도 합니다. 몇년 전에 만들어 놓은 '한나라당호 운영법칙'도 다시 꺼내봅니다. '여기에 무슨 나한테 유리한 법칙이 있을까' 평소에는 책장 구석에 놓여져 먼지가 뽀얀 책을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법칙'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지 못하겠지' 하면서요.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줄 4월에는 새로운 뱃사람 모집이 있습니다.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육지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멋진 일입니다. 그래서 뱃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고향 땅에 많은 약속을 걸어 두고 배를 탔더랬습니다.

"내가 돌아오면, 너도 태워줄게", "그래, 너도 태워줄게"
"아.. 미안, 내가 태워줄 수 있는 사람 수는 다 찼어..그래.. 아냐, 아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정 그러면 너까지는 내가 더 태울 수 있는지 알아볼게"

수 많은 약속을 지키려면, 그래서 의리 있는 사람이 되려면, 뱃사람 모집 4월까지는 내 말이 선장에게 먹혀야 합니다. 그 때는 내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선장이어야 합니다.

'아,, 그런데, 박근혜 선장은 아무의 말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마요, 설마,, 사람이 그럴 리가요, 분명히 친한 사람들 말은 들을 겁니다. 아 못 믿겠어요. 내 말을 안들을 거라면 남의 말도 똑같이 안들어주면 좋은데, 정말 그럴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일단 침몰해가는 배를 바로 띄울 때까지는 박근혜 선장으로 하고 봄바람이 불기 전에 나랑 친한 다른 선장님들도 여럿을 모시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박근혜 선장은 '봄바람이 불면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아 두어도 선원들이 들떠서 항해가 엉망이 되기 마련이니 , 봄바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선장을 맡겨주어야 배를 안전하게 항구에 댈 수 있다'면서 '선장 임기를 봄바람 이후까지로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지 않고는 배를 구하러 나서지 않겠다'고 어디선가 무선을 쳐서 보내주네요. '이거 확실히 선장님이 보낸 거야?' '아 그럼 어떻하지?'  어~ 어~ 그러는 사이 배에는 계속 물이 차고...

다급해진 마음에 선원들의 머릿속은 또 다시 근본적인 고민으로 어지럽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 이 배로는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건 아닐까? 정말 우리가 온 마음으로 열심히 노를 저으면 되는 걸까? 옛 선장이 정말 바뀐 바람과 물살을 손바닥 보듯 읽고 있는 걸까?'

아, 너무 선장한테만 목을 빼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게요, 저도 이제 그런 삶은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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